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승희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전통음식점 ‘큰기와집’ 앞 도로로 바뀌어 있다. |
| 정의 | 1919년 2월 17일 재차 상경한 이승훈이 송진우와 만나 독립운동 거사를 논의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송진우(宋鎭禹)/김승희(金昇熙)/이승훈(李昇薰) |
| 관련 내용 | 1919년 2월 11일 송진우와 만나 천도교 측의 독립운동 일원화 제의를 받아들인 이승훈은 고향인 평안도로 돌아가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동지를 규합한 뒤, 2월 17일 재차 상경하였다. 소격동 김승희의 방에 여장을 푼 이승훈은 곧 사람을 보내 송진우에게 상경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내방한 송진우가 이전과 달리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최남선과의 만남도 쉽지 않아 천도교 측과의 교섭이 어려워지자, 이승훈은 중앙YMCA 간사 박희도 등과 만나 기독교계 단독의 독립운동을 모색하였다. 그러던 차에 2월 21일 최남선이 소격동 숙소로 찾아와 최린과의 만남을 주선함으로써 천도교측과 기독교 측의 합동 교섭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
| 참고 문헌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5, 1972, 18쪽.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자료 38: 종교운동편, 2002, 8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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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소격동 133 |
|---|---|
| 주소 | 서울 종로구 소격동 125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5길 64 (소격동 앞길) |
| 위치 고증 | 『독립운동사지료집』 5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독립선언서 서명자 기타 취조개요」 (『한국독립운동사』자료 38)에 ‘경성 소격동 133번지 김승희 방’으로 그 주소가 명기되어 있다. |














정독도서관 쪽에서 본 김승희 집터 - ‘큰기와집’앞 북촌길
김승희 집에서 3.1운동 거사 계획을 논의한 이승훈
국군서울지구병원에서 본 김승희 집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