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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방한상 집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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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운동계열분류 의열투쟁
종류 가옥
상태 변형 / 증언에 따르면, 지붕이 초가였고 축대가 흙이었던 것이 기와와 돌로 바뀌었을 뿐, 집의 골격은 방한상의 거주 당시와 동일하다고 한다.
정의 대구에서 진우연맹을 결성하여 활동한 방한상이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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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진우연맹(眞友聯盟)/대구청년회 
관련 인물 유림(柳林)/정명준(鄭命埈)/서학이(徐學伊)/하종진(河鍾璡)/서동성(徐東星)/김동석(金東碩)/신재모(申宰模)/마명(馬鳴)/안달득(安達得)
관련 내용 방한상(方漢相, 1900~1970)은 1900년 8월 23일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분덕마을에서 방규진(方圭鎭)과 인동 장씨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만취(晩翠)이며, 흑전(黑田)이라고도 하는데, 후자는 진우연맹(眞友聯盟)의 동지 간 사용한 이름이다.

방한상은 1923년 5월 일본 와세다[早稻田] 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하여 대구청년회 간사로 활동하였는데, 이때 북풍회·화요회 등의 사회주의계열과 접촉하기도 했다. 그 결과 무정부주의사상에 심취한 그는 사회주의계열과의 공동투쟁에 회의를 느끼고 먼저 무정부주의 동지들의 독자적 이념 연마와 결속이 무엇보다도 절실히 요구된다고 생각하여, 1925년 9월 대구에서 신재모(申宰模)·정명준(鄭命俊)·서학이(徐學伊)·마명(馬鳴)·안달득(安達得)·서동성(徐東星)·하종진(河鐘璡)·김동석(金東碩) 등 과 무정부주의사상 연구단체인 진우연맹을 조직하였다.

진우연맹은 무정부주의단체로, 항일운동을 위해 일제의 주요 관서 파괴와 그 수뇌부 암살을 계획하였다. 이의 실행을 위해 1925년 10월 파괴단을 조직하였고 상해의 유림(柳林)을 통해 폭탄을 입수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1926년 7월 연맹원이 모두 검거됨으로써, 거사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방한상은 1928년 5월 징역 5년형을 언도받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제적원부」.
「방한상 등 13인 판결문」, 1927년 7월 5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방한상 등 2인 판결문」, 1928년 5월 3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방한상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경상북도경찰부, 『고등경찰요사』, 1934, 55·239~243쪽.
『동아일보』, 1925년 10월 13일, 「진우연맹 조직, 목적은 사회문제연구」.
『동아일보』, 1926년 8월 30일, 「진우연맹 범죄는 무정부주의 선전」.
『중외일보』, 1927년 5월 21일, 「불원중에 공판 개정되는 진우연맹사건 내용」.
『신한민보』, 1927년 6월 23일, 「관계자 13명 전후, 계획은 재작년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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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572
주소 경남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572
도로명 주소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분덕길 9
위치 고증 「방한상 등 13인 판결문」 등과 『고등경찰요사』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방한상 등 13인 판결문」에는 본적지가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1168번지로 기록되어 있으나, 「방한상 공적조서」와 방한상의 「제적원부」에는 수동면 화산리 572번지로 기록되어 있다. 친인척 이정순(1926년 생)의 자문으로 위치를 확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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