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임규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도로와 인접한 상가로 일부는 도로로 편입되었다. |
| 정의 |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48인 중 1인으로 활동한 임규가 살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최남선/손병희 |
| 관련 내용 |
임규(林圭, 1867~1948)의 호는 우정(偶丁)이며 3·1운동 때 민족대표 48인 중 1인으로 활동하였다. 1895년 일본에 건너가 게이오의숙[慶應義塾] 중학교 특별과를 거쳐 동 전수학교 경제과를 졸업한 뒤 서울의 여러 사립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쳤다. 손병희(孫秉熙) 등이 주축이 된 거족적인 독립운동계획에 참여하여 일본정부와 귀족원·중의원에 조선독립에 관한 의견서와 통고문 및 선언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1919년 2월 27일 최남선(崔南善)으로부터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통고문 3통과 선언서를 받아 3월 1일 일본 동경에 도착, 3일에 이 문서를 일본 수상과 의회에 우송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3월 9일 귀국 도중에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본국에 압송되었으나, 미결수로 1년 7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다가 무죄로 석방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손병희 등 민족대표 48인의 판결문」, 1920년 10월 30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3, 1971, 492~493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9, 1977, 142쪽. 「임규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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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북도 익산군 금마면 동고도리 822 |
|---|---|
| 주소 | 전북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822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손병희 등 민족대표 48인의 판결문」과 『독립운동사』 3권에 관련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임규공적조서」에 주소가 기재되어 있어 이를 근거로 위치를 확인하였다. |














임규 집터 서측면
임규 집터 원경
임규 집터 일대
임규 집터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