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배상권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해외독립운동가 국내사적지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현재 건물은 없고 공터로 방치되어 있다. |
| 정의 | 일본에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한 배상권이 일본으로 가기 전에 살았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북신상업학교유학생회(北神商業學校留學生會) |
| 관련 인물 | 배상권(裵祥權)/최창현(崔昌鉉)/조정규(趙正奎)/배원상(裵元相)/문규영(文奎泳)/박영석(朴永碩)/이종만(李鐘晩)/황도열(黃道烈)/유태열(柳泰烈)/김낙곤(金洛坤) |
| 관련 내용 |
배상권(1915~1942)은 가정이 어려워 1931년 취업과 유학을 목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고베[神戶]에 정착하였다. 이곳에서 고학하며 즙합(葺合)상공실수학교를 거쳐 사립 북신(北神)상업학교 야간부에 입학하였다. 상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8년 7월 하순경, 같은 학교 재학생으로 민족의식이 투철하였던 최창현·조정규 등에게 장차 독립운동에 매진할 것을 역설하고 유학생회 결성을 제안하였다. 같은 해 10월 초순경 고베에 거주하던 친형 배원상의 집에서 친목다화회(親睦茶話會)를 명목으로 동지인 최창현·문규영 등을 비롯해 북신상업학교 한인유학생 박영석·이종만 등 14명과 함께 모여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유학생회(留學生會)를 조직하였다. 이때부터 1939년 2월까지 전후 십수 회에 걸쳐 배원상·최창현·조정규·문규영·황도열·박영석·유태열·김낙곤 등과 함께“한민족의 참된 행복은 민족단결을 굳게 하여 한국기독교의 지도 및 해외 독립운동단체와 연계하에 일본 패전의 기회를 포착, 일제히 봉기하고 독립을 쟁취해야만 가능하다”는 취지의 연설을 하고 독립을 위해 궐기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러한 항일민족운동에 전력하던 중 1940년 3월에 동지 8명과 함께 일경에 체포되어 1940년 12월 16일 고베지방재판소에서 소위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가혹한 고문과 옥고의 여독으로 출옥 후 순국하였다.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토지대장」. 「폐쇄지적도」. 「참고자료 송부의 건 - 첨부)(1936년~1941년)기주 6년간에 있어서의 재주조선인의 치유법위반사건 검거조」, 1942년 4월 8일,『최근에 있어서 재지불령조선인의 책동상황 관한 건』,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재신호 북신상업 조선인의 유학상회의 책동」; 金正明,『朝鲜獨立運動』Ⅲ, 原書房, 1967, 721~728쪽. 박경식 편저, 「사회운동의 상황(1940),『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4-1, 삼일서방, 1976, 415~422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13, 1977, 1196~1206쪽. 황정덕,『진해지역의 항일독립운동사』, 금창출판사, 2004, 272~30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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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읍 석리 374 |
|---|---|
| 주소 | 경남 창원시 진해구 석동 374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일본 내무성 경보국에서 작성한「사회운동의 상황」(1940)을 통해 관련 사실과 당시의 주소지를 확인할 수 있으며,「제적등본」을 통해서도 당시의 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














배상권 집터
배상권 집터 전면
배상권 집터 측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