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북평성황당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문화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변형 / 현재도 성황당이 있으나 당시 성황당의 모습은 아니다. |
| 정의 | 1928년 정건화 등이 성황당을 헌다는 핑계로 공회당 건축을 통해 계몽활동을 벌이려 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삼척청년동맹/혁신당 |
| 관련 인물 | 정건화(鄭健和) |
| 관련 내용 |
정건화는 1917년 3월 삼척군 사립 명동학교(明東學校)를 졸업하고 1918년 4월 경성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년 후 퇴학, 1919년 4월부터 6개월간 명동학교의 교사를 했으며, 같은해 10월부터 1924년 1월까지 북삼면 서기로 봉직하였다. 같은 해 3월부터 약 6개월간 삼척군청 고원(雇員)으로 일하고, 1926년 3월부터 1년간『조선일보』삼척지국 기자가 되어 1930년 11월부터 1931년 12월까지, 1933년 11월부터는 동 신문사 지국장으로 근무하였다. 정건화는 일찍이 사회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1927년 10월 삼척청년동맹을 조직하여 그 집행위원장이 되었으며, 이어 1928년 3월 신간회 삼척지회를 조직하여 그 서무 간사가 되고, 또 같은 해 4월경 혁신단(革新團)을 조직하고 민족정기 고양을 위해 공회당을 지으려고 하였다. 그는 일제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미신타파의 명목으로 각 마을마다 있는 성황당을 파괴하여 그 곳에 공회당을 세우려고 하였다. 이도리와 쇄운리의 성황당을 파괴하는 도중 일본 경찰에게 발각당하여 9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건물손괴죄로 징역 8월에 3년간 집행유예의 판결을 받는 등 삼척군내에서 사회운동을 지도하였다. |
| 참고 문헌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14, 1978, 790~797쪽. 『삼척군지』, 삼척군, 1984, 30쪽. 조성운,『일제하 농민사회와 농민운동』, 혜안, 2002, 3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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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강원도 삼척군 북삼면 이도리 |
|---|---|
| 주소 | 강원 동해시 이도동 654 |
| 도로명 주소 | 강원도 동해시 이원길 73-2 |
| 위치 고증 | 『독립운동사자료집』14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현지 조사에서 이도리 이장의 증언을 참고하였고, 현재도 성황당의 일부가 남아 있어 위치를 확인하였다. |














북평성황당 원경
북평성황당 내부
북평성황당 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