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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조이 집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운동계열분류 사회운동
종류 가옥 
상태 멸실 / 이곳의 일부는 도로로 들어가고 나머지 부분은 대나무 밭으로 변해 있다.
정의 조봉암의 부인이며 경성여자청년동맹의 집행위원으로 활발한 여성운동을 전개한 김조이가 살았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관련 조직 경성여자청년동맹 
관련 인물 허정숙(許貞淑)/주세죽(朱世竹)/조봉암(曺奉岩)
관련 내용 김조이(金祚伊, 1904∼미상. 이명 金造伊)는 1904년 7월 5일 경상남도 창원군 웅천면에서 웅천군의 마지막 군수였던 김재형(金載亨)의 손녀로 태어났다. 부친은 김종태(金鍾泰)이다. 김조이는 계광학교를 나와 서울의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고, 1925년 1월 21일 허정숙·주세죽 등과 발기인으로 경성여자청년동맹을 창립하고 집행위원이 되었다. 같은해 4월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위원 후보로 활동하였고, 11월 청년회 추천으로 러시아 모스크바동방노동자공산대학에서 2년간 유학한 뒤 귀국하여 사회주의운동에 매진하였다. 1932년 함경남도에서 조선공산당재건운동을 하다가 피검되어 1934년 12월 17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았다.

조봉암과 정식 혼인신고가 된 것은 1944년 3월 29일로 조봉암이 1939년 7월 출옥 후 재회하여 정식 혼인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해방 후 김조이는 조선부녀총동맹 인천지부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부위원장이 되었고,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집터는 1973년 12월 27일 진해시로 소유권이 이전되었고, 1992년 9월 189-1번지는 186-2번으로 합병되어 말소되었다. 189번지의 일부는 도로로 들어가고 일부는 대나무 밭으로 변해 있다.
참고 문헌 「토지대장」.
「폐쇄지적도」.
「김조이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조선일보』, 1934년 8월 19일, 「함남공청사건, 양명을 송국 金福萬과 金祚伊를」.
「朝鮮共産黨組織計劃檢擧ノ件」, 1930년 4월 7일, 『사상에 관한 정보철(10)』;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경상북도경찰부,『고등경찰요사』, 1934, 303쪽.
함흥지방법원, 「김조이 수형인명부」, 1934 ;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황정덕,『진해지역의 항일독립운동사』, 금창출판사, 2004, 233·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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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남도 창원군 웅천면 성내리 189
주소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189-2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김조이 수형인명부」와 「김조이 공적조서」 등에 관련 사실과 당시 주소지 등이 기록되어 있다. 「토지대장」과「폐쇄지적도」를 통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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