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익상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열투쟁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현재 아파트 부지로 편입되어, 래미안 공덕 3차 아파트 입구 관리실 옆 화단으로 바뀌었다. |
| 정의 | 1921년 9월 12일 조선총독부 투탄의거 당시 의열단원 김익상이 살았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21 조선총독부 폭탄투척사건/1922 일본육군대장 암살미수 사건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김원봉(金元鳳)/오성륜(吳成崙) |
| 관련 내용 |
김익상(金益相, 1895∼1925)은 1895년 평남 강서에서 태어났다.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광성연초공사의 기계감독으로 한동안 근무하였다. 1920년 6월 광성연초공사 봉천지점으로 전근 발령을 받아 중국으로 건너간 김익상은 평소 꿈꾸던 비행사가 되기 위해 광둥[廣東] 등지를 전전하다가 베이징[北京]에서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입단하였다. 의열단에서 조선총독부 폭파 지령을 받고 1921년 9월 서울로 잠입한 김익상은 9월 12일 전기수리공으로 가장하고 남산 중턱 왜성대 총독부 청사에 들어가 비서과 인사계실과 회계과에 폭탄 2개를 던졌다. 이 가운데 하나는 불발하고 회계과에 던진 폭탄이 터져 기물을 파손하였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거사 직후 피신하여 베이징으로 돌아온 김익상은 1922년 2월 상하이[上海]로 가서 동지 오성륜과 함께 2월 28일 오후 3시 반경 상하이 세관 부두에서 필리핀에서 도착한 일본 전육군대신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육군대장을 향해 폭탄을 던지고 총탄을 발사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체포되어 일본 나가사키[長崎]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순국하였다.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동아일보』, 1922년 4월 6일, 「金益湘의 本家는 市外 孔德里로 判明, 본사 기자의 고심노력한 결과, 마츰내 그의 집까지 발견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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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공덕리 286 |
|---|---|
| 주소 | 서울 마포구 공덕동 457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7길 22 |
| 위치 고증 | 『동아일보』기사를 통해 연초회사 광성상회에 근무할 당시 김익상이 살았던 셋집 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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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