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광주농공은행 영산포지점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일제수탈 |
| 종류 | 건물 |
| 상태 | 변형 / 리모델링하여 영산포 갤러리로 이용되고 있으나, 기본 구조는 유지하고 있다. |
| 정의 | 한국에 이주해 온 일본인들의 사업자금을 지원하는 데 주력하였던 광주농공은행이 있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동양척식주식회사/조선식산은행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1908년 광주농공은행 영산포지점이 설립되었다. 이를 흔히 나주농공은행이라 하였다. 농공은행은 1906년 3월에 제정·공포된 「농공은행조례」에 의거해 전국 주요 도시에 설립되었던 지방은행이다. 1906년 서울에 한성농공은행을 시작으로 평양·대구·전주·진주·광주·충주·해주·경성에 각각 설립되었고, 1907년에 공주·함흥 등 모두 11개의 농공은행이 설립되었다. 1910년 12월 말에는 27개의 지점·출장소를 두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업무를 대행하게 되면서 일본인들의 식민지 정착을 위한 농토 구입자금까지 공급하였다. 1918년 농공은행을 모체로 한 조선식산은행이 설립되면서 이에 흡수·해체되었다. |
| 참고 문헌 |
『황성신문』, 1907년 3월 7일,「農銀出張」. 나주시지편찬위원회,『나주시지』1, 나주시, 2006, 57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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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나주군 지량면 영산현 |
|---|---|
| 주소 | 전남 나주시 영산3길 17(영산동 247-2)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황성신문』1907년 3월 7일자 기사에 “광주농공은행에서 나주군 영산포에 은행 출장소를 설치한다더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나주시지』1에서 1908년 광주농공은행 영산포지점이 설립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현재 건물이 남아 있어 위치를 확인하였다. |














광주농공은행 영산포지점 정면
광주농공은행 영산포지점 우측
광주농공은행 영산포지점 좌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