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지점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일제수탈기구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현재 신용보증기금 대구지점이 자리하고 있다. |
| 정의 | 일제강점기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설치한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지점이 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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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1908년 8월 동양척식주식회사법이 제정됨에 따라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가 설립되었다. 이 회사는 일본인들의 한국 진출을 촉진시키는 것은 물론 미곡 수탈의 기반을 확보하는 데 그 목적을 두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지점은 본사 설립 직후에 설치되고, 경북 일원에 산재하는 부동산과 금융, 이민 등에 관한 관리와 경영을 맡았다. 대구지점 개점 당시에 관리한 토지면적은 한국정부가 현물 출자한 논 1,095정보, 밭 413정보, 잡종지 85정보 등 계 1,589정보였으며, 환산가격으로는 248,942원에 이르렀다. 또한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순수한 금융기관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부에서는 척식자금을 공급하였고, 농공은행에 사업자금을 공급하는 등 금융기능을 확대하였다. 1922년 대구지점의 대출금이 무려 285만원에 달하였다. 당시 대구지점이 관리하는 논 4,000정보, 밭 1,600정보, 대지 125정보, 산림 200정보는 일본인 인수자를 기다리는 분양예정지였고, 1만 2천명을 헤아리는 소작인은 새로운 일본인 지주를 기다리는 빈농에 지나지 않았다. 이 농토에서 징수한 소작료 전량은 일본으로 가져갔다. 동양척식회사의 또 다른 업무는 일본인 이민을 장려하는 것이었다. 한국인 경작자들로부터 빼앗은 토지를 일본인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분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이민을 모집하였다. 1912년 말 대구에 정착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던 일본인 호구 500여 호, 인구 1,700여 명의 대부분은 이 회사의 알선으로 들어온 자들이었다. |
| 참고 문헌 |
「연체금독촉장」(1932년), 한국국학진흥원 옛문서 생활사 박물관. 「동양척식주식회사 위임장」(1923년), 한국국학진흥원 옛문서 생활사 박물관.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 대구지적도」, 1927(대구향토역사관 소장). 향토역사관,『 옛 사진으로 본 근대대구』, 향토역사관, 2008, 74-7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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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대구부 동문정 4 |
|---|---|
| 주소 | 대구 중구 동문동 4-16 |
| 도로명 주소 |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221 |
| 위치 고증 | 「연체금독촉장」과「동양척식주식회사 위임장」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1927년 「대구지적도」를 통해 위치를 확인하였다. |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지점(「1:10,000(昭和12年修正測圖)」, 1937,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지점(1920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출장소(1910년 건립)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지점 터 원경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지점 터 우측면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지점 터 전경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지점 터 후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