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옛 울산경찰서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일제탄압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당시의 건물은 없어지고 공터로 존재하고 있다. |
| 정의 | 일제의 통치 및 탄압기구로 울산군 하상면에서 병영청년회 주도로 전개된 만세시위 관련자들이 연행되어 탄압을 받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서병희(徐炳熙)/이현우(李鉉禹)/이종욱(李鍾旭)/이문조(李文祚)/최현구(崔鉉玖) |
| 관련 내용 | 울산지역의 대표적인 탄압기구로 울산경찰서에서는 1909년 양산 출신의 서병희 의병진이 활동할 때 그를 체포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토벌대를 파견하였다. 또한 1919년 4월 4일 울산군 하상면 서리에서 이현우·이종욱·이문조·최현구 등 병영청년회 회원들이 주도하는 만세시위가 벌어지자 병영경찰관주재소의 응원 요청으로 울산경찰서장 이하 8명의 경찰과 일본군 수비대 5명이 출동하여 무력으로 시위대를 해산하였다. 또한 하상면 서리에서의 3·1만세시위와 관련하여 주도적 역할을 한 자들을 체포하는 등 일제시기 울산지역의 항일운동에 대한 탄압기구로 그 명성이 자자하였다. |
| 참고 문헌 |
「울산군 부내면 북정동 지적원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1912. 「대일본직업별명세도 ; 제194호 조선남부」, 1930. 「朝鮮五萬分一地形圖: 蔚山」, 조선총독부, 1918. 長岡源次兵衛,『蔚山案內』, 蔚山郡, 1917, 52쪽. 「이현우 등 5인 판결문」, 1919년 5월 23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경상남도경찰부,『고등경찰관계적록』, 1936, 14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5, 1972, 1214∼1216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3, 1971, 204∼20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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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울산군 부내면 북정동 |
|---|---|
| 주소 | 울산 중구 북정동 350-3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이현우 등 5인 판결문」 및 『고등경찰관계적록』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울산안내』에 울산경찰서의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으며, 「울산군 부내면 북정동 지적원도」·「조선오만분일지형도: 울산」·「대일본직업별명세도 ; 제194호 조선남부」등의 울산지도를 토대로 현재 지적도와 상호 비교하여 위치를 확인하였다. |














울산경찰서(울산안내, 1917)
울산경찰서(「대일본직업별명세도」, 1930)
측면에서 본 옛 울산경찰서 터
옛 울산경찰서 터 근경
옛 울산경찰서 터 우측
옛 울산경찰서 터 정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