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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제천의병 전투지 - 고장숲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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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병전쟁
종류 산야
상태 변형 / 전투 당시 숲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길이 닦이고 제천역이 들어서 있다. 2008년 조사 당시 주변 마을에 고장숲길이라는 도로명이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도로명을 청풍호로로 바꾸면서 지명조차 찾을 수 없다.
정의 1896년 5월 25일 제천의병과 관군이 전투를 벌였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제천의병, 남산전투, 고장숲 의병전투
관련 조직 유인석 의진 
관련 인물 유인석(柳麟錫), 여국안(呂國安), 안승우(安承禹), 홍사구(洪思九), 장기렴(張基濂)
관련 내용 장기렴이 이끄는 관군이 신속히 진격하면서 1896년 5월 25일(음력 4월 13일)에는 제천을 향해 깊숙이 고장숲(古場林)까지 들어왔다. 안승우가 이끄는 의병부대는 총력을 기울여 남산성(南山城, 一作城)에서 이에 맞섰다. 청나라 사람인 여국안 등도 용감하게 싸워 관군 32명을 사살하였다. 초반의 전투에서 의병이 우위를 차지하여 관군이 고장숲에서 물러서길 세 차례나 하였다. 그렇지만 갑작스러운 비바람에 의병들의 화승총이 먹통이 되었다. 의병들의 주요 무기가 비에 젖으면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자, 의병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안승우와 그의 제자인 홍사구가 끝까지 남아 관군을 막았지만, 결국 관군에게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 당시 안승우의 나이는 32세, 홍사구의 나이는 19세였다.
고장숲 의병전투는 제천의병의 근거지인 제천을 관군에게 빼앗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제천의병이 지닌 취약점(화승총, 군사들의 미숙성)이 드러난 전투이기도 했다. 5월 27일 안승우의 전사 소식을 들은 지휘부는 의진을 장림으로 옮기고, 5월 29일 이강년과 신지수가 제천을 야습하였으나 관군 측의 대비가 만만치 않아 결국 실패하고 단양으로 물러섰다.
정부는 1962년 안승우에게 독립장을, 1963년 홍사구에게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박정수,「하사안공을미창의사실」,『독립운동사자료집』1-의병항쟁사자료집,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464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1, 1983, 274쪽.
구완회,『한말의 제천의병』, 집문당, 1997, 183·188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1, 1984, 478~482쪽.
박정수・강순희 편, 구완회 역,『국역 창의사실기』, 다운샘, 2014, 27쪽.
박인호, 「안승우의 저술과 의병활동」,『지역문화연구』3, 세명대학교 지역문화연구소, 2004, 8~9쪽; 20~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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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충청북도 제천군 현우면
주소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호로 51-5 일대 (영천동 1415)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하사안공을미창의사실」(『독립운동사자료집』1)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현재 고장숲이라는 명칭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어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는 '청풍호로'로 도로명주소가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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