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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강년 의병부대 전투지 - 작성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병전쟁
종류 산야
상태 원형보존 / 원형이 보존되어 있다.
정의 1908년 7월 2일 이강년 의병부대가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관련 조직  
관련 인물 하한서(河漢瑞)
관련 내용 1908년 여름 제천지역 의병에 대한 일본군의 포위망은 나날이 좁혀들고 있었다. 이강년은 충북지역에서 연합전투를 승리로 이끈 후 배향산 부근에서 탄약을 보충하고 남으로 내려가려고 애를 썼다.

이강년 의병부대는 작성산(鵲城山: 제천시 금성면 중전리·포전리에 있는 산, 금수산 북쪽 산자락인데, 까치산성이 있기 때문에 까치성산이라고도 함)에 이르러 장마비를 만났다. 마침 이 일대에는 단양에서 출발한 일본군수비대 아오지마[靑嶋] 소위 이하 21명이 제천경찰서의 순사들과 함께 두 방향으로 나뉘어 정찰 활동을 하고 있었다. 7월 1일(음 6.3)부터 이강년 의병부대는 소야동 쪽을 정찰하던 경찰과 헌병대 6명의 추적을 받기 시작하였는데, 다음날 2일 새벽 70여 명의 부하들을 인솔하고 포전리에서 작성산 기슭으로 이동하다가 기습을 받아 2시간 남짓 교전하였다. 이 작성전투에서 이강년은 왼편 발목에 관통상을 입고 계곡 쪽으로 은신하였다가 추적해 온 모리[森] 순사에게 체포되었다. 또 도선봉 하한서(河漢瑞)를 비롯한 7명의 장졸이 전사하였으며, 이강년은 서울로 압송되었다.
참고 문헌 이화중,「운강선생창의일록」,『독립운동사자료집』1-의병항쟁사자료집,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281쪽.
구완회,『한말의 제천의병』, 집문당, 1997, 354-357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충청북도 청풍군 북면
주소 충북 제천시 금성면 포전리 산 19 작성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운강선생창의일록」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현재 성곽의 흔적이 남아 있어 현장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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