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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여운형 집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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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국내독립운동
종류 가옥
상태 부분변형 / 도로확장 과정에서 건물의 절반이 잘려 나갔는데, 현재 '안동칼국수'라는 음식점이 입주해 있다.
정의 해방 전후 여운형이 살던 집으로, 조선건국동맹과 그것을 모체로 해방 후 발족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거점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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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신한청년당/대한민국임시정부/대한민국 임시의정원/고려공산당/조선건국동맹/조선건국준비위원회/조선인민당/근로인민당 
관련 인물 안창호(安昌浩)/안재홍(安在鴻)/김규식(金奎植)
관련 내용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1885~1947)은 한말 교육계몽운동에 참여하였다가 1913년 중국으로 건너가 남징[南京] 금릉대학(金陵大學)에서 수학한 뒤, 1917년부터 상하이[上海]로 무대를 옮겨 이듬해 8월 신한청년당을 조직하고 총무로 활약하였다.

3·1운동 직후 상하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는 외무부 차장, 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1920년 여름 고려공산당에 가입,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피압박민족대회에 조선민족 대표의 일원으로 참석해 조선의 독립을 역설하였다. 1923년 초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재편 문제를 놓고 국민대표회의가 열렸을 때에는 안창호(安昌浩) 등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개조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후 한·중연대로 민족운동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상하이를 주무대로 광둥[廣東] 등지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다가, 1929년 체포·압송되어 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1933년 조선중앙일보사 사장에 취임하여 언론을 통한 민족운동을 전개하였고, 1944년 8월 비밀결사 조선건국동맹을 조직하여 조국의 독립을 준비하였다. 해방을 맞아 안재홍(安在鴻) 등과 함께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해 해방정국을 이끌었고, 이후 조선인민당과 근로인민당을 결성해 우파의 김규식(金奎植)과 함께 좌우합작운동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1947년 7월 19일 극우파 청년 한지근(韓智根) 등의 저격을 받고 암살되었다. 200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동아일보』, 1947년 3월 18일, 「呂運亨氏 宅에 投彈」.

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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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주소 경성부 계동 140-8
주소 서울 종로구 계동 140-8
도로명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1길 25
위치 고증 『동아일보』 1947년 3월 18일자의 '17일 상오 1시경 시내 계동 140번지의 8호 여운형씨 댁 사랑채 2평이 돌연 대폭음과 함께 폭발'하였다는 기사를 통해 해방 전후 여운형이 살았던 집 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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