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정읍농업학교 학생운동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학생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변형 / 교정 동편의 정자를 제외하고 해방 이전의 건물은 지금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
| 정의 | 1930년 정읍공립농업학교 비밀조직인 ‘독서회’ 학생들이 주동이 되어 동맹휴학을 전개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독서회(讀書會) |
| 관련 인물 | 문동복/김삼홍/김길수/홍재길/고광열 |
| 관련 내용 |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전국으로 파급되자 정읍농업학교에서도 항일민족운동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이 학교는 학생이 150명 정도에 불과하였으나, 1929년초부터 조직되어 운영되던 ‘독서회’라는 비밀조직이 있어 회원들이 주도하여 비밀리에 준비를 진행하였다. 1930년 1월 12일 아침, 교정에 모인 전교생은 일본인교사를 축출하자는 내용의 결의문을 낭독하고 읍내로 뛰쳐나가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진행하였다. 마침 이 날은 정읍장날이었던 관계로 많은 군중이 학생들과 합세하여 한때 읍내 전역이 항일 열기로 끓어 올랐다. 1월 21일 오전에는 12일 사건으로 체포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또 다른 시위사건이 발생하였다. 학생들은 정읍경찰서로 돌진하였으나 70여 명이 붙잡혀 9명은 구금되고 나머지 학생들은 훈방되었다. 이에 격분한 학생들은 동맹휴학에 들어갔다. 결국 붙잡힌 학생들은 약 한 달 만에 모두 풀려났으나 학교 당국은 이들 전원에게 무기정학 처분을 내리고, 1개월이 지나자 문동복(文東□)·김삼홍(金三洪)·김길수(金吉洙)·홍재길(洪在吉)·고광열(高光烈) 등 주동자 5명을 퇴학처분하였다. 정읍농업학교에서는 1932년과 1934년에도 비밀조직인 독서회사건으로 몇 명의 학생이 재차 퇴학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학교는 1910년 5월 13일 군산공립실업학교로 개교하였으며, 1923년 4월 30일 정읍공립농업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여 현위치로 이전하였다. |
| 참고 문헌 |
『동아일보』, 1930년 1월 23일, 「정읍상교 맹휴」. 『중외일보』, 1930년 1월 24일, 「정읍농업교생 일제히 동요」. 「김길수 판결문」, 1944년 1월 29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전북지역독립운동추모탑건립추진위원회, 『전북지역독립운동사』, 신아출판사, 1994, 495~501쪽.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북도 정읍군 군내면 수성리 443 |
|---|---|
| 주소 | 전북 정읍시 수성동 443 |
| 도로명 주소 | 전라북도 정읍시 충정로 252 |
| 위치 고증 | 「김길수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정읍제일고등학교의 연혁에 의하면 1923년 현 위치로 옮긴 뒤에는 주소의 변화가 없는 것으로 확인하였다. 또한 개교100주년기념사업회 관계자의 증언을 통해 관련 사실을 재확인하였다. |














정읍농업학교 일제히 동요(『중외일보』, 1930년 1월 24일)
정읍농업학교 맹휴(『동아일보』, 1930년 1월 23일)
정읍농업학교(현 정읍제일고등학교)
정읍농업학교 옛 교사가 있던 터
1910년 개교하였음을 알리는 표석
현 정읍제일고등학교 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