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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송병선 순국지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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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한말구국운동
종류 가옥
상태 멸실 / 1994년 신협 북대전지점 건물이 들어섰으며, 신협에서 이곳이 송병선 집터였음을 알리는 표지석과 안내판을 입구 옆에 세워 놓았다.
정의 1905년 12월 30일 유학자 송병선이 을사늑약에 통분하여 자결 순국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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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내용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은 충청남도 회덕에서 태어났다. 그는 송시열의 9대손으로 백부인 송달수(宋達洙)에게서 수학하였다. 1882년 공조참판과 대사헌 등에 임명되었으나 거절하였다. 1884년 갑신변복령에 반대하는 척사상소를 올렸으나 비답이 없자 1885년 충청북도 옥천으로 내려와 후학을 양성하였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상경하여 고종을 알현하고 을사5적의 처단과 '을사늑약'의 파기를 건의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이일로 인해 일본 헌병대에 의해 강제로 대전의 자택으로 호송되었다. 1905년 12월 30일 일제로부터 국권을 빼앗김에 통분하여 황제와 국민, 그리고 유생들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결 순국하였다. 유서에서는 '을사5적의 처형과 을사늑약을 파기할 것, 유생들에게 의병을 궐기하여 국권을 찾을 것' 등을 호소하였다.

고종은 그의 충절을 기리어 1906년 2월 문충공(文忠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행장」, 『연재집』.
『대한매일신보』, 1906년 1월 30일,「 山丈殉義」.
황현, 『매천야록』, 국사편찬위원회, 1971, 366~370쪽.
송상도, 『기려수필』, 국사편찬위원회, 1971, 72~74쪽.
김상기, 「대전지역 항일독립운동의 사상적 배경과 전개」, 『대전문화』 6, 대전광역시사편찬위원회, 1997, 144~145쪽.
박경목, 「연재(淵齋) 송병선의 학맥과 민족운동」, 『대동문화연구』 39,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1, 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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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충청남도 회덕군 외남면 연효리
주소 대전광역시 동구 성남동 44-27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연재집』 「행장」에 의하면, 대전 성남동 고택에서 태어나 1905년 이곳에서 순국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현 고택 터에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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