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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강관순 집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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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사회운동
종류 가옥
상태 변형 / ‘강관순 집’은 원래는 흙집이었으나 현재는 지붕과 문 등이 개량이 이루어진 상태이다. 앞쪽에는 창고 건물이 있고, 뒤에 있는 집은 안채로 이용되었다.
정의 항일비밀결사인 혁우동맹원이자 1932년 제주해녀항쟁의 배후인물로 ‘해녀의 노래’를 작사한 강관순이 살았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관련 조직 제주혁우동맹 
관련 인물 신재홍(申才弘), 문도배(文道培)
관련 내용 제주도의 우도(牛島) 출신 강관순(康寬順, 1909∼1942)은 1926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우도에 있는 영명의숙 교사로 재직하면서 계몽운동 및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했다.
1930년 3월 제주도 구좌면에서 청년운동가 신재홍·문도배 등과 함께 비밀결사인 혁우동맹을 결성하여 활동했다. 혁우동맹은 1931년 6월 조선공산당 제주야체이카로 정비되었다. 1932년 1월 제주해녀항일투쟁이 일어나면서 비밀결사 조직이 탄로되어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33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2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옥중에서 ‘해녀의 노래’를 작사했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길에 오르다 1942년 8월 6일 함경북도 청진에서 고문과 옥고에 따른 폐병으로 병사하자 부인 김유생이 남편 시신을 고향으로 반장(返葬)했다.
참고 문헌 「강관순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한정 등 24인 판결문」, 1933년 6월 5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매일신보』, 1923년 9월 30일, 「제주학생친목회」.
『매일신보』, 1932년 3월 5일, 「濟州海女事件後聞」.
『동아일보』, 1932년 12월 11일, 「제주도사건 예심종결서(1)」.
『조선중앙일보』, 1933년 5월 26일, 「濟州革友同盟 廿三名의 公判」.
『조선중앙일보』, 1933년 5월 29일, 「濟州革友同盟 廿九日에 求刑」.
『조선중앙일보』, 1933년 6월 6일, 「제주혁우동맹, 최고 5년역 언도」.
『매일신보』, 1933년 6월 1일, 「濟州革友同盟 最高七年役求刑」.
『매일신보』, 1933년 6월 7일, 「제주혁우동맹사건」.
김찬흡,『제주항일인사실기』, 북제주군, 2005, 98∼99쪽.
『동아일보』, 1932년 12월 11일, 「제주도사건 예심종결서(1)」.
『동아일보』, 1933년 3월 3일, 「濟州島秘社事件 最高 七年重刑 言渡」.
후지나가 타게시, 「1932년 제주도해녀투쟁」, 『4·3장정』, 제주4·3연구소, 1990, 99쪽.
우도지편찬위원회,『우도지』, 1996, 394∼398쪽.
제주도지편찬위원회,『제주항일독립운동사』, 제주도, 1996, 581∼590쪽.
하도향토지발간위원회,『하도향토지』, 2006, 272∼320쪽.
제주특별자치도해녀박물관,『제주해녀사료집』, 2009, 103∼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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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남도 제주도 구좌면 연평리 929-2
주소 제주 제주시 우도면 우도로 307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강관순의 딸 강길려(78세, 우도 거주)의 증언에 의해 새롭게 위치를 비정하였다. 기존에 조사된 곳은 어머니가 살던 집임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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