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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삼의병 전투지 - 태전리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병전쟁
종류 거리
상태 변형 / 현재 광남초등학교 정문 앞 사거리 상가지역으로 변형되어 옛 흔적이나 정확한 위치비정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정의 1908년 10월 3일 용인 출신 의병장 이익삼(李益三) 의병이 이끄는 부대원들이 출동하여 일제 협력자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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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내용 일본 수원경찰서장이 조선총독부 내부경무국장에게 보낸 보고에 의하면, 1908년 10월 1일 오후 9시경 광주군 경안면 태전리에 의병 4명(한복 화승총 2대 휴대)이 태전동 자위단장 집에 침입해 난타 후 금 일만냥을 빼앗아 퇴거했다고 한다. 10월 3일 오후 6시 재차 의병 11명(양총 9정, 군도 2 휴대)이 단장 집에 들어가 그를 살해하였다. 이에 일본 헌병과 경찰관 등이 경안면 소쌍령에서 의병장 이익삼(李益三)의 부하라고 칭하는 의병 1명을 체포했으나 "귀소 도중 저항 도주를 기도하였으므로" 총살하였다고 보고하였다.
경기도 용인 모현면 출신의 의병장 이익삼은 1907년 7월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고 '정미조약'이 체결되면서 8월에 군대가 해산되자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다. 이익삼 의병부대는 주로 광주와 용인, 죽산·양성 등지에서 유격전으로 일제와 전투를 벌였으며, 일진회 등 친일파를 처단하거나, 빈민을 구제하는 등의 활동을 떨쳤다. 그러던 1909년 6월 2일 밤 10시경 용인 신원리에서 일제의 수원수비대 제3중대 7명의 토벌대와 이익삼 등 6명이 조우하여 전투가 벌어졌다. 이익삼 부대는 분투하였으나 피체되고 말았다.
참고 문헌 「暴徒에 關한 編册(1908.10.), 本月 一日 午後 八時頃 廣州郡 慶安面 胎田里에 暴徒 四名」,『한국독립운동사자료』12 - 의병편 V,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경기도사편찬위원회,『경기도항일독립운동사』, 경기도, 1995, 923쪽.
광주문화원,『광주의 지명유래』, 2005, 551-552쪽.
김순권, 『경기지역 의병운동연구』, 한양대 박사학위논문, 2002.
홍영기, 『한말 후기의병』,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63~69쪽.
「광주군 경안면 胎田里 폭도 4명」(1907.10월); 「폭도수괴 체포에 관하여」(1907.6월) 『한국독립운동사자료』12~16, 의병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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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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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주소 경기도 광주군 경안면 태전리
주소 경기도 광주시 고불로 46번길(경안면 태전동 18·19일대)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暴徒에 關한 編册」에 관련 사실이 명기되어 있다. 『광주의 지명유래』(광주문화원, 2019)에 의하면, 경안면 태전동은 조선 성종의 태를 묻었다하여 '태봉(胎峯)'으로 불렀다. 태밖에(胎外), 땟골(茅谷), 옥터골(獄洞) 등의 4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행정동인 광남동의 중심지역인 태봉은 태전리의 인구 밀집지역으로 광남초등학교 정문 앞 사거리 마을입구가 의병전투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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