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왕회종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현재 돼지농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
| 정의 | 한말 중후기의병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한 왕회종이 살던 집이 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연천의병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왕회종(王會鍾) |
| 관련 내용 |
왕회종(王會鍾)은 부친 왕재만과 어머니 우봉이씨 사이에 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자는 광일(光逸)이고, 호는 두암(斗菴)이다. 18세에 서당을 운영하다 21세 때 숭의전 참봉에 임명되어 근무하던 중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연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500여 명의 의병을 지휘하며 일본군과 유격전을 벌여 금성·토산 등지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길주·명천·갑산·혜산진까지 북상하였다. 또한, 1907년 고종이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었을 때에도 조인환(曺仁煥)·권준(權俊)·김진묵(金溱默) 등과 함께 의병부대를 지휘하며 양주·파주·적성·철원·춘천·양구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 13도연합의진의 서울진공작전이 실패한 후 임진강 일대에서 활약하다가 총대장 허위(許蔿)가 체포되어 순국하자, 왕회종은 만주로 망명하여 청년교육에 힘쓰다가 의병전쟁 중 입은 부상이 악화되어 1925년 1월 8일 세상을 떠났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대한매일신보』, 1907년 11월 30일,「왕씨유모」. 『관보』(第三千六百七十六號), 1907년 1월 30일,「숭의전 참봉에 임명」. 『승정원일기』, 1907년 3월 7일,「숭의전 참봉 왕회종을 의원면직」.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1-의병항쟁사, 1970, 500-501·532·583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3-의병항쟁사자료집, 1971, 666·701·706쪽. 개성왕씨중앙종친회,『개성왕씨세보』, 2004, 119-12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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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마전군 군내면 아미리 |
|---|---|
| 주소 |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숭의전로237번길 171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대한매일신보』 1907년 11월 30일자에는“마전군에 사는 왕회종이 의병을 일으키자 일병이 마을에 불을 질렀는데, 왕회종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이 창의했으니 죽어도 원이 없다고 하면서 다시 불에 들어가려는 것을 일병이 막았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 왕회종의 생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현장조사 결과 왕회종의 재종조카(7촌)인 왕영록(72, 아미리 181번지 거주)은 당시 마을에 개성 왕씨 일곱 집이 살고 있었는데 모두 불탔으며, 아미리 284번지가 왕회종의 집이었다고 증언하였다. |














왕회종 집터
왕회종 집터 원경
왕회종 집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