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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고광순의병장 순국지 - 연곡사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병전쟁
종류 건물
상태 변형 / 1908년 당시 연곡사는 일본군이 소각해버렸으며, 그 뒤 연곡사 및 부속 건물이 신축되어 당시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정의 1907년 10월 고광순 의병장이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가 순국한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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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조직  
관련 인물 고광수(高光秀)/윤영기(尹永淇)/고제량(高濟亮)/고광훈(高光薰)
관련 내용 고광순(高光洵, 1848~1907)은 본관이 장흥, 자는 서백(瑞伯), 호는 녹천(鹿川)으로, 초명은 광욱(光旭)이었다. 전남 창평에서 출생하여 한학을 수학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있자 기우만이 이끄는 장성의병에 참가하였다.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그는 1906년 6월 최익현·임병찬 등이 일으킨 태인의병에 가담하려 했으나, 이른바 12의사가 체포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남원의 양한규 의병부대와 함께 의병을 일으킬 계획이었으나, 이미 양한규 의병부대의 패진으로 다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고광순은 독자적으로 의병을 일으키기 위해 동지들을 규합하여 1907년 12월 창평에서 창의의 기치를 세웠다. 마침 전북에서 의병을 일으킨 김동신과 내장산에서 만나 지리산에서 장기항전을 벌이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리하여 그는 의병을 이끌고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에 들어가 장기항전을 하기 위한 의병항쟁기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탐지한 일본군의 급습을 받아 1907년 10월 17일(양) 그를 비롯한 수십명의 주요 장졸들이 연곡사에서 전사했다.

이들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구례군민들은 1958년에 고광순이 순국한 연곡사 경내에 순절비를 건립하여 그의 숭고한 의병활동을 기렸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1, 1970, 245·246·248-250·402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2, 1971, 522·635-637·685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3, 1971, 281-291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별집』1, 1974, 568·834쪽.
김정명, 『명치100년사총서』1, 원서방, 국학자료원, 1980, 155,181쪽.
홍영기, 『대한제국기 호남의병연구』, 일조각, 2004, 286쪽.
구례군지편찬위원회, 『구례군지』, 2005, 474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평지리 연곡사
주소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1017
도로명 주소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로 774
위치 고증 「고광순 공적조서」에 관련 사실이 명기되어 있고, 순절비가 순국 현장에 건립되어 있어서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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