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삼척적색노농공작위원회 결성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기타 |
| 상태 | 변형 / 해안선의 위치 등이 과거와는 조금 차이가 난다. |
| 정의 | 1933년 7월 24일 삼척지역 적색 농민조합 및 노동조합 조직을 지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삼척적색노농조합공작위원회가 결성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이상인(李尙寅)/박래빈(朴來賓)/심부윤(沈富潤)/변소봉(卞小鳳)/정석대(鄭錫大) |
| 관련 내용 |
삼척적색노농조합공작위원회(三陟赤色勞農組合工作委員會)는 1933년 7월 24일 심부윤·변소봉·정석대·이상인·박래빈 등이 삼척지역의 적색 농민조합·노동조합 조직을 지도하기 위해 결성한 비합법 조직이다. 위원회는 조직 부서로서 노동부와 농민부를 설치하여 적색 농민조합·노동조합 조직에 주력했다. 먼저 삼척군내 농업 중심지인 북삼면에는 박래빈의 주도 하에 북삼면적색농민조합조직준비회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각 리(里)마다 적농조직을 만들어 1933년 10월에는 마침내 주운농민조합을 결성하는데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삼척군내 노동의 중심지인 근덕면 덕산리에서는 노조를 조직하고자 활동하기도 했다. 1933년 11월 16일 지도급 인물인 심부윤 외 4명이 체포되면서 일대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변소봉과 김덕환이 다시 활동을 전개하면서 1933년 12월에는 산업별적색노동조합조직지도위원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적색 농민조합·노동조합 조직 활동 외에 기관지를 발행하고자 했고, 각종 기념일 투쟁을 통해 대중에 대한 선전·선동을 시도했다. |
| 참고 문헌 |
『동아일보』, 1935년 9월 4일, 「三陟赤色農組 豫終 十六名 有罪決定, 治維法違反 暴力行爲 等으로 咸興法院 公判에 廻附」. 『동아일보』, 1935년 10월 27일, 「最高 六年 求刑 十六名 被告에게 모조리 體刑, 三陟赤色農組 公判」.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14, 1978, 790∼797쪽. 김점숙,「1920-1930년대 영동지역 사회운동」,『역사와현실』9, 1992, 295∼298쪽. 조성운,『 일제하 농촌사회와 농민운동 - 영동지방을 중심으로』, 혜안, 2002, 99∼10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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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강원도 삼척군 삼척면 오분리 |
|---|---|
| 주소 | 강원도 삼척시 오분동 231-3 해안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동아일보』1935년 9월 4일자 기사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독립운동사자료집』14권의 판결문을 통해 오분리해안으로 위치를 비정했다. |














삼척적색농민조합 공판기사(『동아일보』, 1935년 10월 27일)
삼척초등학교에 있는 애국지사정석대추모비(2021년 촬영)
삼척적색농민조합 공판기사(『동아일보』, 1935년 9월 4일)
삼척적색노농공작위원회 결성지 전경(2021년 촬영
삼척적색노농공작위원회 결성지 전경(2021년 촬영
삼척적색노농공작위원회 결성지(2021년 촬영
삼척적색노농공작위원회 결성지(2021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