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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고평 집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해외독립운동가 국내사적지
종류 가옥
상태 멸실 /현재는 밭으로 바뀌어 건물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다.
정의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장기간 대일무장항쟁을 전개한 고평이 살던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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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광복단/의군부/북로군정서/고려혁명군/재만동지회 
관련 인물 박동원(朴東轅)/구춘선(具春先)/김영학(金永學)/유예균(劉禮均)/서일(徐一)/서왈보(徐曰甫)/김규식(金圭植)
관련 내용 고평(高平, 1886∼미상)은 1902년 서울 보광중학교(普光中學校)를 졸업하고 경성관립법관양성소(京城官立法官養成所)를 거쳐 1905년 4월 경성지방법원 춘천지청 검사로 임명되었다. 한편 불교에도 심취하여 전북 부안의 내소사에 머물며 불교철학을 공부하였고, 1911년 7월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1919년 2월 중국으로 건너가 길림성 연길현 국자가 박동원의 집에서 구춘선·김영학·유예균 등과 함께 광복단을 조직, 간도지방의 모든 교회와 단체는 독립선언서가 발표되는 대로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결의하고, 3월 13일 용정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어 4월에는 구춘선·서일·서왈보 등과 노령에서 개최된 신국민대회(新國民大會)에 참가하였으며, 연길에서 의군부(義軍府)가 조직될 때 중부 의군부 참모장에 임명되어 5개 대대를 인솔하였다.

청산리대첩 후에는 북로군정서군과 함께 노령으로 들어갔으나, 1921년 6월 자유시사변이 일어나자 다시 연길현으로 돌아와 의군부 재기를 위하여 활동하였다. 1923년 5월 김규식을 총사령으로 고려혁명군(高麗革命軍)이 조직되자 참모장이 되어 군사훈련과 조직을 강화하여 400여 명의 인원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28년에는 재만동지회(在滿同志會)를 조직, 이주한 교민들의 정착에 주력하였다. 이후 중국 관내로 이주한 뒤의 행적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199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10, 1976, 114쪽.
국가보훈처,『해외의 독립운동사료』중국편(5), 1997, 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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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북도 고부군 고부면 신흥리
주소 전북 정읍시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해외의 독립운동사료』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가 망명하기 전 살았던 곳은 김갑석(85) 등 신흥리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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