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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영암공립보통학교 동맹휴학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학생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당시 건물은 완전히 멸실되었고, 그 위치에 현재의 영암초등학교가 신축되었다.
정의 1922년과 1923년 영암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민족차별교육에 항의하며 동맹휴학을 벌인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22.9 영암공립보통학교 동맹휴학/1924.6 영암공립보통학교 동맹휴학
관련 조직  
관련 인물 한완상(韓晥相)/한현상(韓晛相)/김준오(金俊五)
관련 내용 1922년 9월 영암공립보통학교 5·6학년 학생들이 조선인 학생들을 무시하는 교장 및 교사들의 태도 시정과 조선창가 및 조선역사의 교수 등 12개 조건을 요구하며 동맹휴학을 전개하였다. 학교측은 곧 개선을 약속하여 학생들이 수업을 재개하려 하였으나 다시 교사와의 갈등이 빚어져 동맹휴학이 재개되었다. 학교측에서는 주도학생들을 불러 조사하는 한편 도청에서는 학생 한완상(韓晥相)의 형인 목포 사립영흥학교 교사 한현상(韓晛相)을 배후로 지목하여 파면시키고 그 친구인 영암공립보통학교 훈도 김준오(金俊五)를 전근시켜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이 사건은 당시 『동아일보』 사설과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 등에 기사가 실리는 등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1924년 6월에도 다시 동맹휴학이 일어나 군청 앞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는 등 사태가 커지자 7월 일본인 교장이 동맹휴학 사태가 자신의 책임이라며 자살하였다.

영암공립보통학교는 1898년 10월 사립 낭남학교(浪南學校)로 설립되었으며, 1908년 4월 영암공립보통학교로 인가받아 같은 해 6월 11일 개교하였다.
참고 문헌 『동아일보』, 1922년 9월 19일, 「조선역사를 교수하라고, 영암보통학교 생도 동맹휴학」.
『동아일보』, 1922년 9월 20일, 「(사설)조선어창가와 조선역사의 교수 - 영암학생의 동맹휴학」.
『동아일보』, 1922년 9월 22일, 「교장체임을 기하고 휴학을 계속하는 영암의 보통학생」.
『동아일보』, 1922년 10월 17일, 「맹휴선동의 혐의로 영암보교의 훈도를 전근케, 일로 인하여 학생은 또 휴학」.
『동아일보』, 1924년 7월 4일, 「맹휴책임으로 교장자살, 전남 영암공보에서」.
『동아일보』, 1924년 7월 5일, 「(사설)일교장의 인책자살」.
『시대일보』, 1924년 6월 27일, 「영암공보 더 분규, 학교 당국의 태도는 강경」.
『시대일보』, 1924년 6월 29일, 「영암공보맹휴 속보, 학부형측도 불신임, 학무위원의 결의문 광고를 학동들은 찌저버리고 야단, 영암공보 맹휴속보」.
『독립신문』, 1922년 9월 30일, 「우리 역사를 교수하라고 영암보통학교 학생 동맹휴학」.
영암초등학교 홈페이지(http://www.yeonga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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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면 회문리
주소 전남 영암군 영암읍 영암초중고길 1(회문리 186)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동아일보』·『시대일보』·『독립신문』 등에 관련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당시 영암공립보통학교 터가 현재 영암초등학교의 위치임을 영암초등학교 행정실에서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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