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영역

  • 지역별
  • 운동별

사적지 찾아보기

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진우연맹 허무당선언서 작성지 - 윤우열 집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사회운동
종류 가옥
상태 멸실 / 윤우열의 집은 없어지고, 한의원 건물이 들어서 있다.
정의 1925년 11월 초순부터 12월 초순까지 윤우열이 허무당선언서를 작성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관련 조직 서울청년회/철성단/경북사회운동자동맹/조선청년총동맹 
관련 인물 하은수/전일/양명/이윤재
관련 내용 허무당선언서(虛無黨宣言書)는 1925년 11월 초순부터 12월 초순까지 윤우열(尹又烈)이 대구부 명치정(明治町) 2정목 1번지(현 계산동2가)에 있는 자신의 자택에서 작성한 투쟁선언서이다. 그는 1924년 서울청년회에 가입한 후 철성단·경북사회운동자동맹·조선청년총동맹 등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1925년 7월 동지를 규합하여 무력행사를 실현하고자 허무당(虛無黨)을 조직한 후, 같은 해 11월 초순부터 허무당선언서를 작성하여 12월 초순에 완성하였다. 그는 선언서에서 격렬한 혁명과 투쟁을 강조하며 일제에 무력으로 대항하자는 뜻을 밝혔다. 윤우열은 이것을 1926년 1월 2일과 3일 사이 동지 하은수(河銀水)를 시켜 서울 조선청년총동맹사무소와 한성강습원(漢城講習院)의 등사기를 이용하여 선언서를 인쇄하였다. 이후 선언서는 경성부 계동(桂洞) 전일(全一)의 집으로 옮겼다가 우편으로 신문사·은행·잡지사 등 전국 각지 및 일본으로 발송되었다. 그후 윤우열은 양명(梁明)·이윤재(李允宰) 등의 집에 숨어 지내다가 1926년 1월 12일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1년 2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다 석방되었으나 출옥후 4개월 만에 사망하였다.
참고 문헌 「윤우열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시대일보』, 1926년 1월 17일, 「직접 행동을 목적한 허무당 사건 내용」.
「윤우열 판결문」, 1926년 5월 5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 「대구지적도」, 1927(대구향토역사관 소장).
경상북도경찰부, 『고등경찰요사』, 1934, 236~238쪽.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북도 대구부 명치정 2정목 1
주소 대구 중구 계산동2가 1-1
도로명 주소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28
위치 고증 『고등경찰요사』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윤우열 판결문」에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1927년 「대구지적도」를 통해 위치를 확인하였다.

하단영역

관련사이트

주소: 31232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1  전화: 041-560-0405 팩스 : 041-560-0426 
 Copyright 2021 THE INDEPENDENCE HALL OF KOREA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