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하락의병 주둔지 - 의흥관아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의흥면사무소·농협 등 다른 건물들이 들어 서 있다. |
| 정의 | 1896년 5월 김하락이 이끄는 의병이 주둔 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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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김하락의진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이 내려지자, 1896년 1월 1일(음 1895.11.17) 경기도 이천에서 결성되었다. 1896년 1월 17일 백현전투(魄峴戰鬪), 2월 12일 이현전투(利峴戰鬪)를 치렀으나 1896년 3월 22일 광주산성의진(廣州山城義陣)·양근의진(楊根義陣)과 연합한 남한산성의진이 패전함에 따라, 김하락의진은 4월 9일 이천에서 경상북도로 이동하였다. 김하락의진은 여주·제천·영주 등지를 거쳐 4월 28일 의성에 도착하고, 금성면 수정사(水淨寺)에 주둔하였다. 이때 김하락은 군위에 주둔하던 관군 300여 명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조성학이“여기서 의흥읍까지는 20리 밖에 되지 않고, 군중에는 탄약이 전혀 없으니 만약 뜻하지 않은 변이 있다면 반드시 패하고 말 것인즉, 지금 의흥으로 가서 탄약을 가지고 경주부 기계·죽장 양면으로 향하면, 열흘 이내에 군사 3백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하며 의흥에서 군수품을 획득할 것을 제의하였다. 김하락은 조성학의 제안을 수락하고, 의병들에게 밥을 먹인 후, 5월 9일 의흥(義興)으로 이동하였다. 저녁이 되어 의흥에 도착하였는데, 군수와 관원들은 모두 달아난 상태였다. 그리하여 김하락의진은 무기와 화약 대여섯 짐 가량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후 김하락의진은 의성·청송의진과 연합하여 1896년 5월 14일 청송군 안덕면 감은리에서 전투를 치렀다. |
| 참고 문헌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1-의병항쟁사자료집, 1983, 599쪽. 유한철,「金河洛義陣의 義兵活動」,『한국독립운동사연구』3,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9, 28쪽. 이동우,「乙未年 慶商道地方의 義兵抗爭」,『사학연구』58·59, 한국사학회, 1999, 976-97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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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대구부 의흥군 중리면 읍상동 |
|---|---|
| 주소 | 경북 군위군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김하락 진중일기」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의흥면사무소 부면장과 동네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의흥관아 위치를 확인하였다. |














의흥관아 터 후면에서 본 전경
의흥관아 터 후면
의흥관아 터 원경
의흥관아 터 우측
의흥관아 터 좌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