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전홍표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애국계몽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당시의 가옥을 없어지고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동화학교를 설립하고, 밀양군 밀양면 독립만세시위를 지도한 전홍표가 살았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동화학교/진성학교/집성학교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전홍표(全鴻杓, 1869∼1929)는 전계진(全桂軫)과 정하(鄭河)의 2남으로 밀양군 부내면 내이동 928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한학을 공부하였고, 1906년 밀양향교 명륜당 자리에서 안희원(安禧遠)이 중심이 되어 개교한 진성학교 교사를 거쳐, 1908년 동화학교(同和學校)를 설립하여 학생들에게 자주독립과 애국사상을 고취하며 항일교육운동에 종사하였다. 후일 김원봉을 비롯한 의열단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19년 3월 13일 밀양만세운동 지도자들에게 거사를 지도하였고, 만세운동을 교사한 혐의로 일제 경찰의 검거를 피해 북간도로 피신하였다. 이 곳에서 일제의 폭력적 3·1운동 진압 아래 조선을 해방시키는 방법은 오로지 무장투쟁이라는 투쟁방법 밖에 없음을 다시 천명하는 내용의「고천문(告天文)」을 지었다. 1921년 초 밀양으로 돌아가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24년 전후 밀양의 향교에 설립된 집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
| 참고 문헌 |
「밀양군 부내면 내이동 지적원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1912. 『대한매일신보』, 1908년 9월 22일, 「광고-사립 밀양 노하동 동화학교 취지서」. 『동아일보』, 1921년 8월 21일, 3면 1단, 「사형수 시체를 환영한 밀양청년 삼십명을 마침내 기소」. 전홍표,「고천문(告天文)」.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3, 1971, 222∼224쪽. 강만길 편,『밀양의 독립운동사』, 밀양문화원, 2003, 111·125·134∼135·138쪽. 손기현,『약산 김원봉 장군』, 밀양문화원, 2005. 김삼웅,『약산 김원봉 평전』, 시대의 창,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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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밀양군 부내면 내이동 928 |
|---|---|
| 주소 | 경남 밀양시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제적등본」을 토대로「밀양군 부내면 내이동 지적원도」와 현재 지적도를 상호 비교하여 위치를 확인하였다. |














전홍표 관련기사(『동아일보』, 1921년 8월 21일)
내이동 우체국 방면에서 바라본 전홍표 집터 측면
밀양강 방면에서 바라본 전홍표 집터 전경
밀양강 방면에서 바라본 전홍표 집터 측면
내이동 우체국 방면에서 바라본 전홍표 집터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