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영역

  • 지역별
  • 운동별

사적지 찾아보기

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박동의의병 전투지 - 대원사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병전쟁
종류 건물
상태 복원 / 1948년 여순사건때 진압군에 의해 전소된 것을 1955년 중창하였다.
정의 1908년 8월 29일 박동의의병이 일제 경찰과 교전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08.8.29. 대원사 부근에서 일본군과 교전
관련 조직  
관련 인물 박동의(朴東義)
관련 내용 산청지역 의병투쟁의 중심적 인물인 박동의(朴東義) 의병장은 지리산 전역을 중심으로 덕산(德山), 벽계암(碧溪庵), 대원사(大原寺) 등지에서 일본군과 여러 차례 전투를 벌여, 큰 타격을 주었다. 박동의는 250여 명의 의병들과 함께 벽계암을 진영으로 삼고, 부장 겸 선봉장 이학로(李學魯), 중군장 황의중(黃義仲), 후군장 주치도(朱致道), 향도관 서병희(徐炳熙)를 중심으로 조직을 편성하고 항일전을 펼쳤다.

대표적인 전투로는 1908년 3월의 산청주재소와 산청군청 습격, 1908년 4월의 단성 순사주재소 습격, 8월의 대원사 부근의 전투를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1908년 8월 29일의 대원사 근처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는 박동의의병 50여 명이 일본 경찰(경남 산청분견소) 다수에게 총상을 입히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산청군 삼장면 대원사는 지리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어 의병의 주요 근거지이도했지만 그만큼 일제의 토벌대'가 자주드나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대원사는 진흥왕 9년(548)에 연기(緣起) 조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평원사(平原寺)였으나 임진왜란때 전소되었으며, 그 후 조선 숙종 11년(1685)에 중창하여 대원암이라 했다가, 고종 27년(1890)에 재중창하여 대원사가 되었다.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진압군에 의해 전소되었다. 1955년 9월 중창불사를 하여 현재의 가람이 되었다.
참고 문헌 경무국,『융희 2년 4월 폭도에 관한 편책』, 1908
경무국,『융희 2년 8월 폭도에 관한 편책』, 1908.
경무국,『명치 41년 5월~12월 한국주차군 적정통보철』, 1908.
경무국,『융희 3년 1월 폭도에 관한 편책』, 1909.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자료』19, 의병편Ⅻ, 1990.
『경남일보』, 2007년 5월 15일,「산청지역 항일투쟁」.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주소 경남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8-2 일대
도로명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평촌유평로 445
위치 고증 『폭도에 관한 편책』에 대원사에서의 의병활동에 대해 기록되어 있으며, 박동의 의진의 대원사에서의 교전상황에 대해서는 경상남도 경찰부장 壹岐寬의 보고「산청군 대원사에서 폭도와 교전 한명이 부상 입음」(1908년 8월 31일)에 언급되어 있다.

하단영역

관련사이트

주소: 충남 천안시 동남구 북천읍 삼방로 95 전화: 041-560-0441 팩스 : 041-560-0426 
 Copyright 2014 THE INDEPENDENCE HALL OF KOREA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