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제천의병 창의지 - 자양영당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건물 |
| 상태 | 원형보존 / 자양영당은 원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2001년 의병전시관을 개관하였고, 제천시 문화관광과에서 관리하고 있다. |
| 정의 | 1895년에 의암 유인석이 8도의 유림을 모아 창의의 비밀결사를 한 장소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이항로(李恒老), 김평묵(金平黙), 유중교(柳重敎), 유인석(柳麟錫), 주용규(朱庸奎), 서상렬(徐相烈), 안승우(安承禹), 이소응(李昭應), 송시열(宋時烈), 이항로(李恒老), 이직신(李直愼) |
| 관련 내용 |
화서 이항로와 김평묵의 문하에서 수학한 유중교는 1889년 8월 춘천 가정에서 제천 장담으로 이주하면서 제천 지역 사회에서 화서학파의 기반을 형성하고자 하였다. 유중교가 장담에 자리를 잡으면서 창주정사(滄洲精舍, 長潭書社)를 세우니 유인석, 주용규, 서상렬, 안승우 등 많은 문인들이 따라와 가르침을 받았다. 유중교는 봄가을에 강신을 행하고, 민사제(民社祭)를 거행하였다. 강회는 1893년 3월 유중교가 장담정사에서 고종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으며, 문인들 간의 결속 효과를 크게 거두면서 후에 유인석의 의병활동 기반으로 작용하였다. 유중교 사후 문도들이 모여서 서상렬을 고과(考課, 스승이 부재시 그 역할을 대리하는 역)로 하여 강회를 지속하였으며, 1895년 3월 의암 유인석이 장담서사(長潭書社)를 열며 새로운 스승으로 추대되어 강회를 이끌었다. 유인석은 1895년 전국에 단발령이 시행되자, “문경을 포기하고 야만으로 돌아가는 일”이라고 하며 8도 유림 600여 명을 모아 의병을 일으킬 것을 발의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의병을 창의하였다. 1903년 습재 이소응이 제천으로 이주하면서 유중교의 학문을 정리하였다. 1906년 3월 자양영당 건립에 대한 논의를 시작으로, 7월부터 건물을 짓고 9월에 자양영당이 건립되었다. 자양영당에는 주자(朱子), 송시열, 이항로, 유중교의 영정을 모셨으며, 후에 유인석, 이직신이 추가로 배향되었다. |
| 참고 문헌 |
『성재집』부록 권1 박정수,「하사안공을미창의사실」,『독립운동사자료집』1-의병항쟁사자료집, 1971, 355-356쪽. 구완회, 「省齋 柳重敎의 강학과 문인집단의 확대-화서학파의 四郡지역 전파와 관련하여」,『역사교육논집』44, 역사교육학회, 2010, 299~309쪽. 김상기, 「甲午更張과 甲午・乙未義兵」,『국사관논총』36, 국사편찬위원회, 1992, 78~80쪽. 허준구, 「습재 이소응을 통해 본 의암 류인석 연구-의암 류인석과의 상관성을 중심으로」,『의암학연구』13, 의암학회, 2016, 177~18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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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북도 제천군 근좌면 공전리 |
|---|---|
| 주소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475(의암로 566-7)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하사안공을미창의사실」(下沙安公乙未倡義事實)및『성재집』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원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














제천의병 기념탑
복원된 유인석 고택(내부)
자양영당 전경
유인석 고택 입구
화동강목장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