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영학숙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애국계몽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원형보존 /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
| 정의 | 1906년 4월 1일 고정주가 집안의 자제들과 친분이 있는 집안의 청년들을 외국에 유학시키기 위해 설립한 예비 영어학교가 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창흥의숙 |
| 관련 인물 | 고정주(高鼎柱)/고광훈(高光薰)/송진우(宋鎭禹)/김성수(金性洙) |
| 관련 내용 |
1906년 4월 1일, 을사조약 후 창평으로 돌아온 고정주(高鼎柱)는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근대적인 교육을 실시하였다. 영학숙과 창흥의숙을 설립한 것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영학숙은 집안 자제들과 친분이 있는 집안의 청년들을 외국에 유학시키기 위한 예비 영어 학교였다. 고정주는 자신의 아들이 언어문제로 유학생활에 어려움을 겪은 것을 보고, 외국어의 기초를 닦은 후에 유학을 보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래서 외국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상월정을 보수하여 영학숙을 개교하였다. 영학숙의 영어교육은 서울에서 초빙되어 온 이표(李瀌)가 담당했다. 그는 영학숙의 숙장(塾長)이자 교사로서, 영어에 능통하고 한학에도 조예가 깊은 인물이었다. 이곳에서 고정주의 아들인 고광훈, 사위 김성수, 송진우 등이 수학하였다. 영학숙 터는 고려 경종 1년(916)에 창건된 대자암(大慈庵)이 있었던 곳이다. 조선 세조 3년(1437) 추제 김자수(楸齊 金自修)가 벼슬을 사임하고 고향인 이곳에 돌아와 대자암 터에 상월정(上月亭)을 창건하였다가 손자사위인 덕봉 이경(德峰 李儆)에게 양도하였고, 이경은 사위 고인후(高因厚)에게 양도하였다. 정자가 낡아 1808년 연재(淵齋), 초정(草亭)이 수리되었고, 1851년 신해년의 수해로 다시 고재준(高在俊)·고광호(高光鎬) 등이 보수하였다. 1858년에 월헌장(月軒丈)이 서까래와 보를 수리하는 등 몇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
| 참고 문헌 |
고하송진우선생전기편찬위원회, 『고하 송진우선생전』, 1965, 동아일보사, 26-31쪽. 인촌기념회편, 『仁村 金性洙傳』, 1976, 49-50쪽. 손정연, 『무송 현준호』, 1977, 27-29쪽. 김학준, 『가인 김병로평전』, 민음사, 1988, 38-43쪽. 담양군, 『 담양군지』(하), 담양군, 2002, 693·1193~1194쪽. 홍영기, 「한말 고정주의 활동을 통해 본 호남의 근대교육」, 『우송조동걸선생정년기념논총』 Ⅱ, 나남, 1997, 164-179쪽. 임소정, 「호남학회와 춘강 고정주에 대하여 : 신교육운동을 중심으로」,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이재의, 「호남 근대교육의 선구자, 고정주」, 『藝鄕』 3월호, 광주일보, 97쪽. 『전남일보』, 2009년 4월 15일, 「 長興高氏: 담양 창평고씨 가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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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용수리 |
|---|---|
| 주소 | 전남 담양군 창평면 용운길 142-1 상월정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담양군지』(하)에 1906년 4월 1일 영학숙이 설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토대로 고영준(담양군 창평면 유천리 거주)과 현지 주민들의 증언으로 위치를 확인하였다. |














영학숙(2022년 촬영)
영학숙 측면(2022년 촬영)
영학숙 전경(2022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