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고종즉위40년 기념칭경비전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한말구국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부분변형 |
| 정의 | 고종(재위 1863~1907) 즉위 40주년을 맞아 나이 51세에 기로소에 들어 간 것과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 칭호를 사용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02년(광무6) 9월에 세운 비석과 전각이 있는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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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민병석(閔丙奭)/윤용선(尹容善) |
| 관련 내용 |
1902년 9월 한성부 중서 징청방 황토현에 건립된 고종즉위사십년 칭경기념비(高宗卽位四十年稱慶紀念碑)는 귀부·비신·이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신 앞면에 ‘대한제국 대황제 보령망육순 어극사십년 칭경기념송(大韓帝國大皇帝寶齡望六旬御極四十年稱慶紀念頌)’이라고 쓴 황태자 시절 순종의 전액(篆額) 글씨가 있다. 비문은 윤용선이 짓고 민병석이 썼는데, 서(序)와 송(頌)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황제 칭호를 쓰고 광무(光武)라는 연호를 세운 일, 재위 40년이 된 일과 기로소에 들어간 의절(儀節)을 베푼 사실 등을 기록하였다. 기로소(耆老所)는 정2품 이상의 벼슬아치 중에서 70세가 넘은 이들을 우대하기 위한 곳인데, 고종은 나이 51세로 기로소에 입소하였다. 비를 보호하는 비전(碑殿)은 20세기초 전통적인 건축양식의 틀이 해체되기 직전에 세워진 건물로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앞면 3칸, 옆면 3칸의 정자 모양을 하고 있는데, 건물 기단 둘레에 돌난간을 설치하였다. 비전 남쪽의 무지개 모양을 한 ‘만세문’은 일제 때 일본인이 떼어 가 대문으로 사용하던 것을 해방 후 찾아와 복원한 것이다. 6·25전쟁으로 건물 일부가 파손되었는데, 1954년에 보수하고 1979년에 완전 해체 복원함으로써 옛 면모를 갖추었다. |
| 참고 문헌 |
『황성신문』, 1903년 1월 6일, 「광무6년도의 만국상란을 개기하건데」. 『동아일보』, 1936년 1월 19일, 「신춘 각국영사관 순방기(18)」.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육백년사-문화유적편-』, 1987, 1135~1136쪽. 「경성시가도」(1927);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지도』, 2006, 5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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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한성부 중서 징청방 황토현 |
|---|---|
| 주소 | 서울 중구 종로 142-3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황성신문』 1903년 1월 6일자에 기념비각을 한성부 중서 징청방 황토현 앞 우순청 터에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경성시가도」(1927)에 기념비전의 위치가 표기되어 있다. |














광화문 우체국에서 본 고종즉위40년 칭경기념비전
고종즉위40년 칭경기념비전 앞의 사람들
세종로 사거리에서 본 기념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