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대교농장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일제수탈 |
| 종류 | 건물 |
| 상태 | 변형 / 현재 농장사무실은 등록문화재 제209호로 지정되었으며 화교학교에서 관리하고 있다. 사무실은 2층 건물로 일본식 주택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지붕은 우진각 지붕이다. 망와에는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방치되어 건물 일부가 훼손되었다. |
| 정의 | 일제강점기 대교농장의 사무실과 호남지역 최대의 쌀 창고가 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대교농장(大橋農場)은 1907년 9월 오오하시[大橋與市]에 의해 개설되어 익산시장(현 남부시장)에 사무소를 건축하고 이후 소유지 1,300여 정보의 논으로 농업경영을 시작하였다. 1915년 당시 익산지역의 3대 농장 중의 하나로 익산지역 택지의 대부분은 대교농장의 소유였다고 하며 대교농장의 쌀 창고는 호남 최대였다고 전한다. 이곳은 1919년 3·1운동 당시 대교농장 직원들이 만세시위를 벌이는 주민들을 구타한 곳이기도 하다. 대교농장 사무실은 건축면적 41.32㎡, 연면적 75.2㎡로 1914년에 건립되었다. 지붕의 망와에 대교(大橋)라는 글자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
| 참고 문헌 |
山下英爾, 『호남보고 이리 안내』, 혜미순옥서점, 1915(경인문하사, 1989, 471쪽). 宇津木初三郞, 『조선의 보고, 전라북도발전사』, 전북교육급산업사, 1928(경인문화사, 1898, 149~150쪽). 『경성일보』, 1930년 5월 29일, 「(전라북도) 大橋農場が裡里を手放す」. 『군산일보』, 1933년 6월 30일, 「朝鮮は氣樂だ, 赤字字字で苦しむ內地の小地主, 株式會社大橋農場常務大橋四郞氏談」. 익산시사편찬위원회, 『익산시사』, 2001, 991~997쪽. 전라북도, 『근대문화유산 목록화 및 조사보고서』, 2004, 246~24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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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북도 익산군 이리읍 본정 2정목 |
|---|---|
| 주소 | 전북 익산시 주현동 105-9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경성일보』 1930년 5월 29일자 기사와 『조선의 보고, 전라북도발전사』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1907년 창설 이후 계속하여 현 위치에 있었으며 농장사무실이 남아있다. |














대교농장 전경
대교농장 상무 오오하시(大橋四郞) 담화 기사(『군산일보』, 1933년 6월 30일)
대교농장 창고 주변
대교농장 창고 건물
대교농장 사무실 측면
대교농장 사무실 후면
익산화교학교 정문 - 대교농장
대교농장 사무실 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