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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진만 집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열투쟁
종류
상태 멸실 / 도로에 편입되어 옛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정의 광복단과 대한광복회에 가입해 활동한 김진만이 살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관련 조직 조선국권회복단 
관련 인물
관련 내용 김진만(金鎭萬, 1876∼1934)은 1910년대의 대표적인 국내 독립운동단체였던 광복단과 대한광복회 회원으로 활약했다. 광복회는 1915년 7월 대구에서 풍기의 광복단과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의 인사들을 통합하여 결성된 단체이다. 비밀·폭동·암살·명령을 행동강령으로 삼고, 군자금을 조달하여 국내의 혁명기지를 확보하는 한편 만주의 독립군 기지를 지원하여 독립군을 길러 독립을 쟁취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는 조직확대와 더불어 총사령 박상진(朴尙鎭)의 지휘아래 군자금 조달에 힘을 쏟았다. 김진만은 군자금 모집을 위해 1916년 8월에 박상진으로부터 받은 권총을 갖고 김진우(金鎭瑀)·정운일(鄭雲馹)·최병규(崔丙圭) 등과 그의 장인인 대구 부호 서우순(徐祐淳)의 집에 숨어들었다. 그런데 이를 목격한 그 집의 머슴과 격투가 벌어졌고, 그의 동생 김진우가 머슴에게 권총을 발사하여 일이 어렵게 되자 김진만 일행은 피신하였다. 그러나 곧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17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언도받고 8년 넘게 옥고를 치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 문헌 「김진만 등 4인 판결문」, 1917년 6월 18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대구지적도」, 1927(대구향토역사관 소장).
「참고인 김진만 신문조서」; 국사편찬위원회,『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7, 국사편찬위원회, 1988, 6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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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북도 대구부 남산정 668-7
주소 대구 중구 덕산동 668-17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김진만 등 4인 판결문」과『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7권 등에 관련 사실과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1927년「대구지적도」를 통해 위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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