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병철 집터 - 대한민국청년외교단 거점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국내독립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현재 신축 3층 건물에 엘리트고시원 등이 입주해 있다. |
| 정의 |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총무를 지낸 이병철의 집터로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의 활동거점이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대한민국임시정부/대한민국애국부인회 |
| 관련 인물 | 이병철(李秉澈)/송세호(宋世浩)/안재홍(安在鴻)/이종욱(李鍾郁)/나창헌(羅昌憲)/조용주(趙鏞周)/연병호(延秉昊)/조소앙(趙素昻) |
| 관련 내용 |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은 독립정신을 선전·보급하고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원조하여 세계 각국에 외교원을 파견함으로써 독립 실현을 보장받는 것을 목적으로 상해에서 파견된 조용주·연병호·송세호 등과 국내의 이병철(李秉徹)·안재홍 등이 연결되어 1919년 6월경 결성한 비밀결사이다. 서울에 본부를 두고 대전·회령·충주 등지에 국내지부를, 상해에 해외지부를 설치했다. 안재홍과 이병철이 총무를 맡았는데, 안재홍은 강령·규칙을 비롯한 문안작성 업무를 맡고, 이병철은 자금과 조직을 맡았다. 또한 조소앙이 외교특파원으로, 조용주·연병호 등이 외교원으로 선임되어 상해에서 활동했다. 애국금을 모금해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보내고 「외교시보」, 「국치기념경고문」 등의 선전물을 인쇄·배포하는 한편, 「독립운동참가단체 조사표」, 「피체의사(被逮義士) 조사표」, 「가옥파괴 조사표」 등을 작성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고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총무 이병철은 대한민국애국부인회 결성에도 관여해 제 규칙을 기초하고 특별회원으로 활약했는데, 경상북도 경찰부에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활동이 탐지되어 11월 말 체포됨으로써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조직 또한 탄로나고 말았다. |
| 참고 문헌 |
「대한민국청년외교단·대한민국애국부인회 사건판결서」; 김정주 편, 『조선통치사료』 5, 한국사료연구소, 1970, 735-743쪽. 「청년외교단원 검거에 관한 건」(1919. 12. 3) ; 김정명, 『조선독립운동』 Ⅰ-분책, 원서방, 1967, 207~212쪽. 『조선병합십년사』, 조선출판협회, 1922, 480~48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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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냉동 170 |
|---|---|
| 주소 |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172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대한민국청년외교단·대한민국애국부인회 사건판결서」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의 결성 시기에 대해서는 문헌에 따라 1919년 5 월 또는 6월로 차이를 보인다. 또한 창립 장소에 대해서도 냉동 170번지(『조선병합십년사』)와 수은동 3번지 안모 여인의 집(「 청년외교단원 검거에 관한 건」)으로 차이가 나는데, 이병철이 청년외교단의 총무로 활약했다는 점에서 판결문 등에 나와 있는 그의 집 냉동 170번지가 활동 거점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














의주로에서 본 이병철 집터.대한민국청년외교단 거점
이병철 수감 중 위독하다는 기사(『동아일보』, 1920년 9월 14일)
경기대 쪽에서 본 이병철 집터.대한민국청년외교단 거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