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지평의병 전투지 - 단성면 장회리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산야 |
| 상태 | 변형 / 의병전투지 일부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었고, 주변으로 새 도로가 포장되었다. 2008년 조사 때와 크게 변화되지는 않았으나 장회나루 휴게소가 새로 단장되었다. |
| 정의 | 1896년 1월 22일 이필희가 이끄는 제천의병이 관군과 전투하여 승리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장회협 전투 |
|---|---|
| 관련 조직 | 을미의병, 이필희 의진 |
| 관련 인물 | 이필희(李弼熙), 서상렬(徐相烈), 이춘영(李春永), 안승우(安承禹), 이범직(李範稷) |
| 관련 내용 |
1895년 제천 장담을 근거로 한 선비들은 흑의령(黑衣令)과 단발령이 선포되자 거병하였다. 1896년 1월 17일(음력 1895년 12월 3일) 대장(大將)에 이필희, 군사(軍師)에 서상열, 중군(中軍)에 이춘영, 군무도유사(軍務都有司)에 안승우가 각각 임명되었다. 우선 창의에 가담하지 않은 단양군수 권숙(權肅)을 체포구금하고 관아를 점령하였다. 정부는 공주에 있던 장기렴의 관군을 단양으로 파견하여 이필희가 이끄는 제천의병진을 토벌하고자 하였다. 1896년 1월 22일(음력 1895년 12월 8일) 공주 관군이 단양을 공격해왔다. 제천의병진은 단양읍이 몹시 협착하였기 때문에 군사를 나누었으며, 이필희는 장림(長林)으로 진지를 옮기고, 이범직은 유교(楡橋; 유다리)를 지켰다. 서상렬의 지휘 하에 이춘영은 60명의 포군을 거느리고 단양으로 진입하는 길목인 장회협에 의병을 매복시켜 관군을 급습하였다. 관군에서 4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군수물자를 얻는 등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의병 측은 1명이 전사하고, 수 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의병들은 승세를 타고 북쪽으로 몇 리를 추격하였으나 날이 차고 저물어 추격을 그만두었다. 이 전투는 제천의병이 최초로 거둔 승리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지휘체계의 부재와 군사들의 혼란 등 초기의병의 한계를 드러낸 싸움이기도 하다. |
| 참고 문헌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1-의병항쟁사, 1970, 175-181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1-의병항쟁사자료집, 1971, 358-359쪽. 구완회,『한말의 제천의병』, 집문당, 1997, 71-72쪽. 김상기,『한말 전기의병』한국독립운동의역사9,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43~52·158-159쪽. 이동우, 「乙未年 忠淸地方의 義兵運動硏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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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북도 단양군 장회협 |
|---|---|
| 주소 |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 산20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하사안공을미창의사실」(『독립운동사자료집』1권)과 「육의사열전」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장회리와 유다리 지명이 현재에도 남아있다. 2008년 조사 당시 단양군향토사연구위원인 지성룡이 장회협 위치를 증언하여 현장을 확정하였다. |














장회협 원경
장회협 원경
외중방리 유다리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