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송내호・송기호 형제 생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변형 / 당시 건물은 일부 구조만 남아있으며, 현재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
| 정의 | 일제강점기 완도지역 사회운동을 이끌었던 송내호・송기호 형제가 태어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대한독립단/신간회 |
| 관련 인물 | 송내호/송기호/정순영/김기한/김정환/안재홍/권동진/신석우/김준연/김정수 |
| 관련 내용 |
송내호(1895~1936)는 1919년 서울에서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동지들과 고향 완도에서도 거사할 것을 계획하고 3월 15일 천도교·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11월에는 서울에서 동지 정순영(鄭舜永)의 소개로 만주 관전현에서 조국광복을 목적으로 조직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사한장(司翰長) 김기한(金起漢)을 만나 독립단의 취지에 적극 찬동하고 이에 가입하였으며, 전라도 지단(支團)을 설치할 책임을 맡았다. 이에 전라도 일대에 배포할 임시 통칙 등 9종의 인쇄물을 받아 고창(高敞)의 김정환(金淀煥)에게 이를 위임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진행하다가 일경에 탐지되어 체포되었다. 그는 결국 1921년 9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조국광복에 대한 염원에는 변함이 없어 신간회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1925년 2월 15일 신간회 창립총회에서 안재홍(安在鴻)·권동진(權東鎭)·신석우(申錫雨)·김준연(金俊淵) 등 35명과 함께 간사가 되어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송기호(1900~1928)는 1919년 3월초 광주농업학교(光州農業學校) 재학중에 친우 김정수(金丁洙)등과 같이 동년 3월 10일 광주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또한 광주숭일학교(光州崇一學校) 학생들의 규합책임을 맡아서 활동하고 3월 10일 대시위운동에 광주숭일학교(光州崇一學校) 학생들을 가담케 함으로써 시위진행을 주도하다가 붙잡혔다. 동년 4월 30일에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받았다. 동년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공훈을 기리어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송내호 판결문(경성지방법원, 1921.09.30.) 완도군지편찬위원회, 완도군지, 완도군, 1992, 315~22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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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남 완도군 소안면 비자리 1435 |
|---|---|
| 주소 | 전남 완도군 소안면 소안로 163-1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송내호 판결문」에서 본적지 주소가 확인된다. 1915년 지적도와 현재 지번을 비교하였고, 현재 거주하고 계신 주민과 마을 주민의 증언을 통해 위치를 확인하였다. |














송내호・송기호 형제 생가(2023년 촬영)
송내호・송기호 형제 생가(2023년 촬영)
송내호・송기호 형제 생가(2023년 촬영)
송내호・송기호 형제 생가(2023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