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윤식 생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원형보존 / 본채, 사랑채, 문간채 등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으며, 생가 주변으로 시문학파기념관과 모란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
| 정의 | 1919년 3월 강진 지역 3.1만세운동을 준비하였고, 일제에 저항하는 시를 발표했던 김윤식이 태어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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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김현상/김현균/김성수/김만철/양경천/김안식/김학수/김영수 |
| 관련 내용 |
1902년 (음)12월 18일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강진면(康津面) 남성리(南城里)에서 태어났다. 본명인 김윤식(金允植)보다 아호인 김영랑(金永郞)으로 더 알려진 문인이기도 하다. 1915년 강진보통학교(康津普通學校)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영어를 배우다가,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하여 정지용(鄭芝溶), 홍사용(洪思容) 등으로부터 문학적 영향을 받았다. 1919년 3월 서울에서 만세시위 후 독립선언서를 감추고 귀향하였다. 그리고 3월 23일 김현상(金炫庠), 김현균(金玄均), 김성수(金晟洙), 김만철(金萬哲), 양경천(梁京千) 등 6명과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태극기 500여 개를 제작할 비용으로 2원씩을 갹출하였다. 한편 일본 도쿄(東京)에서 조선유학생의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1919년 3월 20일 귀향한 김안식(金安植)은 김학수(金學洙), 김영수(金永洙) 등과 3월 25일 강진 장날 독립 만세운동을 거행하기로 하고, 3월 23일 선언서 초안을 작성하였다. 또 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하고, ‘청년단(靑年團)’ 대표자로 김안식, 김학수, 김영수 3인의 성명을 기록하였다. 이렇게 따로 만세시위를 준비하던 중, 3월 24일 김현상 등과 김안식을 만나 3월 25일 강진 장날에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뜻을 모았다. 그러나 태극기의 제작과 선언서 작성에 차질이 빚어지자 3월 30일로 연기하고 거사를 도모하던 중, 강진경찰서(康津警察署)에 붙잡혀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1919년 4월 5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1919년 5월 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검사가 다시 상고하였으나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무죄가 확정되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중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김윤식 판결문」(1919.04.05.) 박찬승, 「1920, 30년대 강진의 민족운동과 사회운동」, 『지방사와 지방문화』14권 1호, 역사문화학회, 2011. 박종린, 「일제시기 강진의 재편과 사회운동의 지역적 양상」, 『한국사학보』38, 고려사학회,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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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남 강진군 강진면 남성리 |
|---|---|
| 주소 | 전남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15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김윤식 판결문」에 전남 강진군 강진음 남성리 학생으로 기록되어 있고, 현재 생가가 남아있어 위치를 확인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