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영역

  • 지역별
  • 운동별

사적지 찾아보기

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임창모 묘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운동계열분류 의병전쟁
종류 묘소
상태 원형보존 / 임창모의 묘는 아들 임학규의 묘와 함께 있다. 앞의 것이 아들의 묘이고, 뒤의 것이 임창모의 묘이다. 묘소 입구에 비석이 세워져 있으나, 안내표지판 등은 찾아볼 수 없다. 묘소도 수풀이 우거져 있는 상태이다.
정의 양회일·안규홍 의병부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했던 임창모의 묘소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관련 조직 양회일 의병부대/안규홍 의병부대 
관련 인물 양회일/안규홍/임노복
관련 내용 임창모(林昌模, 1869-1909)는 전남 보성 출신의 의병장이다. 고려조 좌승상을 지낸 조양군 휘세미의 22세손으로, 자는 낙균(樂均), 호는 월담(月潭)이다. 1885년 무과에 급제하여 중추원의관을 지냈다.
1905년 을사늑약에 체결되자, 낙향하여 양회일·이광언·노현재·임노복 등과 함께 쌍산의소를 창설하였다. 이들은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증동 마을 뒷산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의병투쟁에 나섰다. 임창모는 쌍산의소의 중군장으로서 항일전에 앞장섰다. 능주와 화순의 군아(郡衙)와 주사청·우편소·경무서·일본인 상가 등을 습격하고, 통신시설을 파괴하였다. 또한 친일관리들도 공격목표로 삼아 친일파의 집에 불을 지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임창모는 호남의 요충지인 광주 공격에 실패함으로써 양회일을 비롯한 핵심인물들과 함께 체포되고 말았다. 재판에서 15년형을 선고받고 전남 신안군 지도(智島)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고초를 겪었다.
1907년 12월 융희황제의 특사로 풀려난 임창모는 안규홍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1908년 4월부터 1909년 9월까지 보성·순천을 비롯한 전남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항일투쟁을 이끌었다. 일제 군경을 공격하고, 친일파 처단에 앞장섰다.
그러자 일제의 강력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이에 안규홍 의병부대도 위축되어 갔다. 그리하여 1909년 9월 중순 지도부를 포함한 60여 명의 부하들이 투항하였고, 안규홍은 의병부대를 해산하였다.
임창모는 해산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1909년 10월 13일, 1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보성군 복내면 흑석동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아들 임학규와 함께 순국하였다.
참고 문헌 보성군사편찬위원회, 『보성군사』, 보성군, 1995, 313·319·323-324쪽.
박민영,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10(한말중기의병),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132-140쪽.
홍영기,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11(한말후기의병),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221-230쪽.
이태룡, 「전남의병 ‘거괴(巨魁)’로 불린 임창모 의병장」, 『월간 순국』 통권 345호,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2019, 118-134쪽.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남 보성군 보성읍 용문리
주소 전남 보성군 보성읍 용문리 산21-21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이태룡의 글에 관련 사실과 묘소의 주소·위치·사진이 제시되어 있다.

하단영역

관련사이트

주소: 31232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1  전화: 041-560-0405 팩스 : 041-560-0426 
 Copyright 2021 THE INDEPENDENCE HALL OF KOREA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