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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정태봉 집터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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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군자금모집
종류 가옥
상태 멸실 / 수풀이 우거져 있는 터만 남아 있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집터 정면에 화순군에서 세운 비가 세워져 있어 이곳이 정태봉의 집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정의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원으로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했던 정태봉이 살았던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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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관련 인물 김창평(金昌平)/김두환(金斗煥)/문상직(文相直)/장택원(張澤遠)/이강희/유상묵/노차갑
관련 내용 정태봉(鄭太鳳, 1893-1942)은 부친 정기열과 모친 밀양손씨 사이의 3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고, 숙부를 따라 승광사에서 수학하기도 하였다.
정태봉은 1920년경부터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1920년 11월 초, 광주면 궁정 김창평(金昌平)의 집에서 김두환(金斗煥)과 만나 임시정부에 보낼 군자금을 모집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1921년 정월 말경까지 군자금 모집 경고문과 취지문 수십여 통을 제작하여 전남 화순·보성·장성 일대의 부호들에게 배포하였다. 이 사건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정태봉은 1927년 9월부터 신간회 대구지회 서무 및 총무간사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그는 문상직·장택원·이강희·유상묵·노차갑 등과 만나 현재 독립운동 현황을 진단하고, 독립운동에 더욱 매진하기 위한 비밀결사를 조직하기로 협의하였다. 이들은 같은 해 5월 20일 대구 달성공원 인근에서 비밀결사 ‘ㄱ당’을 조직하였다. ㄱ은 한글의 첫 글자로서 조국의 기원을 의미한다는 뜻에서 ㄱ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 ㄱ당은 모집된 독립운동 자금으로 만주의 농경지를 사들여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활용하고, 뜻있는 청년들을 중국 광동성 군관학교에 입학시켜 실력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이들은 독립운동자금 모집활동을 벌였다. 그러던 1928년 6월 11일, 노차갑이 곽동영(郭東英)과 함께 달성군의 부호인 김교식(金敎式)을 찾아가서 5천원의 자금을 요구하였으나 김교식이 일제 경찰에 취조당하는 과정에서 조직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정태봉은 일제 경찰에 붙잡혀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 받았으나 이후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참고 문헌 「정태봉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1921년 7월 26일.
「정태봉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21년 9월 29일.
「정태봉 판결문」, 고등법원 형사부, 1921년 11월 3일.
「정태봉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29년 6월 6일.
「정태봉 판결문」, 고등법원 형사부, 1929년 8월 29일.
「정태봉 판결문」, 대구지방법원 형사부, 1929년 12월 27일.
『신한민보』, 1928년 12월 13일, 「민족주의자를 규합하여 무기수입을 계획하였다고」.
『동아일보』, 1928년 12월 21일, 「民族主義的結社 ㄱ黨員 鄭太鳳 文相直」.
『동아일보』, 1928년 12월 29일, 「ㄱ黨員 判決 最高는 五年 피고여섯사람이 모다 유죄」.
『동아일보』, 1929년 6월 1일, 「大邱ㄱ黨事件 控訴公判開廷, 文相直 鄭太鳳 원심대로 최고 오년구형」.
『중외일보』, 1929년 8월 13일, 「정태봉 사건 검사의 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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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남 화순군 동복면 칠정리 280
주소 전남 화순군 동복면 칠정리 280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정태봉 공적조서」와 「항일 독립투사 송계 정태봉 선생 기적비」를 통해 관련 사실과 위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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