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양진여 의병부대 전투지 - 추월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산야 |
| 상태 | 변형 / 등산탐방로 입구에 ‘의병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
| 정의 | 1908년 11월 25일 양진여 의병부대가 일본군 토벌대와 격전을 벌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양진여(梁振汝)/전해산(全海山)/강판열(姜判烈) |
| 관련 내용 |
양진여(梁振汝, 1862-1910)는 전남 장성 출신의 의병장이다. 1907년 10월경 인원을 모집하여 의병부대를 조직한 뒤, 전남 광주·담양·장성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10월 23일 담양에서 일본군 기병 2명을 기습 공격하였고, 같은 달 26일에는 광주군 송정읍에서 일본군 헌병과 순사로 구성된 ‘토벌대’를 격퇴하는 성과를 올렸다. 또한 막강한 전력의 일본군을 상대하기 위해 전해산·강판열 의병부대와 연합작전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들 연합부대는 1908년 11월 23일 대치산에서 일본군 광주수비대와 격전을 치렀다. 3시간여의 전투 끝에 승리한 이들은 일본군의 반격을 예상하고 연합의병부대를 분산하여 일본군의 반격에 대처하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이에 양진여 의병부대는 이후 연합의진을 나와 담양군 추월산으로 이동하였다. 1908년 11월 25일 양진여 의병부대는 일본군 야마다[山田] 소위가 이끄는 토벌대와 추월산에서 전투를 벌였다. 예상대로 의병부대를 뒤쫓아 온 일본군이 공격을 해온 것이다. 의병들은 추월산 고지에서 포까지 쏘며 일본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의병 15명이 목숨을 잃고, 포와 화승총을 빼앗기는 큰 피해를 입었다. |
| 참고 문헌 |
「양진여 공적조서」 『폭도에 관한 편책』 3, 1908.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남 담양군 용면 월계리 추월산 |
|---|---|
| 주소 | 전남 담양군 용면 월계리 산81, 추월산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양진여 공적조서」와 『폭도에 관한 편책』 3(1908)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담양군에서 세운 의병전적지 표지석이 세워져 있어 위치를 확인하였다. |














양진여 의병부대 전투지 전경(2022년 촬영)
양진여의병전적지 비석(2022년 촬영)
양진여 의병부대 전투지 전경(2022년 촬영)
양진여 의병부대 전투지 전경(2022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