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호남의병 창의 모의지 - 용추사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현재 용추사의 일부로 판단되는 천불전이 남아있다. |
| 정의 | 1906년 5월 30일 최익현과 기우만 등 유림 50여명이 참석하여 항일전을 수행할 방책을 모의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최익현/기우만/이재윤/고석진/최제학/임병찬/김병로 |
| 관련 내용 |
1904년 2월 일제는 러일전쟁을 도발하고 한일의정서를 강요하고 한국에 대한 군사적 지배권을 장악하려 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의병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최익현은 창의토적소를 올리고, 포고문을 내어 항일투쟁을 호소하였다. 1906년 3월 최익현은 고적신이 의병을 일으킬 것을 건의하자, 임병찬에게 편지를 보내 뜻을 같이할 것을 권하였다. 그리고 최익현은 이들과 함께 의병부대 조직에 나섰다. 의병을 규합하기 위해 각지를 돌아다니며 필요한 인사들과 접촉하였다. 인근 지역으로 격문을 발송하고 사람을 보내 의병모집과 군기수집에 전력을 기울였다. 또한 항일전의 방략을 협의하고 의병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기우만과 만남을 가졌다. 기우만은 노사 기정진의 손자로 호남지방 유림의 거두이며 항일세력의 중심인물이었다. 최익현은 1906년 5월 30일 전남 담양의 추월산에 있는 용추사(龍湫寺)에서 기우만과 만났다. 이 자리에는 호남 각지의 유림 50여명도 참석하였다. 이 중에는 해방 후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도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항일전을 수행할 방책을 함께 논의하였다. 이 자리에서 의병을 일으키자는 것에 모두의 동의가 이루어졌다. 이들은 거의의 정당성을 천명하고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격문을 발포하였다. 격문은 최익현의 이름으로 지어졌고, 순천·낙안·여수·광양·장흥·보성·강진·해남 등 전남 각지로 발송되었다. 그 핵심은 전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결사항전을 통해 일제를 몰아내야 한다는 당위성과 의병이 일제 침략세력에 맞선 정의로운 집단을 강조한데 있었다. 또한 이들은 의병에 동참하기로 한 사람들의 연명부인 「동맹록」을 작성하여 항일전을 수행할 결의를 다졌다. 이 「동맹록」에는 최익현·기우만·이재윤·고석진·최제학·임병찬 등 모두 112명이 연명하였다. |
| 참고 문헌 |
최제학, 「면암선생창의전말」, 『독립운동사자료집』 2, 1971, 65-67쪽. 김진배, 『가인 김병로』, 가인기념회, 1983, 15-16·238쪽. 임병찬, 『의병항쟁일기』, 한국인문과학원, 1986, 199-200쪽. 박민영,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10(한말중기의병),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113-115쪽. 홍영기,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동학혁명·한말의병』, 광주광역시, 2015, 177쪽. 김건우, 「한말 전북지역 의병의 인적 관계망-습제 최제학을 중심으로-」, 『전북사학』 52, 전북사학회, 2018, 253-274쪽. 안성은, 「을사늑약 이후 전북지역 유생 습제 최제학의 항일활동」, 『전북학연구』 1, 전북연구원 전북학연구센터, 2019, 11쪽. 홍영기, 「한말 태인의병의 활동과 영향」, 『전남사학』 11, 전남사학회, 1997, 395-42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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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남 담양군 용면 용연리 |
|---|---|
| 주소 | 전남 담양군 용면 용소길 268-165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면암선생창의전말」과 『의병항쟁일기』 등을 통해 위치를 확정하였다. |














호남의병 창의 모의지 일대 전경(2022년 촬영)
호남의병 창의 모의지 일대 전경(2022년 촬영)
호남의병 창의 모의지 일대 전경(2022년 촬영)
호남의병 창의 모의지 일대 전경(2022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