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무등회 결성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학생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현재 수창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
| 정의 | 1941년 3월 광주서중학교 학생들이 비밀결사 무등회를 조직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무등회 |
| 관련 인물 | 강한수, 기영도, 유몽룡 |
| 관련 내용 |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을 계기로 일제는 전시통제체제를 구축하고, 민족운동에 대한 극단적인 탄압과 민족말살정책을 한층 강화하였다. 광주서중하교 학생들의 항일운동은 이와 같은 혹독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1938년 경부터 기환도, 나굼주, 주하준, 유몽룡, 주만우, 강한수, 남정준 등은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독서회는 지속적으로 회원을 확대하였고, 1940년 3월 경부터 기존 독서회를 확대 재편하여 무등회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였다. 무등회는 창씨개명과 조선어 사용 금지 등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을 비판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무등회는 회원이었던 주만우가 담양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민족의식을 이깨우는 발언을 하였다가 일본인 교사의 밀고로 체포되었다. 이 과정에서 무등회 회원 유몽룡, 강한수, 남정준 등이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무등회가 타격을 입긴 하였지만, 무등회 조직 자체는 발각되지 않았다. 무등회 회원들은 1942년 5월 다시 조직을 재정비하고 보다 많은회원들을 확보하면서 활동을 강화하였다. 무등회는 일본이 치르는 미국과의 전쟁을 기회로 한국이 독립을 할 수 있는 기회라 선전하면서 교내 조선어 사용, 민족동화정책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등 교풍쇄신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무등회 조직이 드러나면서 1943년 8월까지 4개월에 걸쳐 350여 명의 학생이 체포되었다. 무등회의 핵심인물 30여 명은 모두 일제에 의해 구속되었다. |
| 참고 문헌 |
「유몽룡 판결문」(1942.12.26.) 「남정준 판결문」(1944.9.18.)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 『타오르는 횃불:광주학생독립운동』, 2009, 9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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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광주부 북정 14 |
|---|---|
| 주소 | 광주광역시 북구 금남로 99 수창초등학교 운동장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유몽룡 판결문」과 「남정준 판결문」, 기영도 회고(『타오르는 횃불, 99쪽)에 따르면 무등회는 유몽룡의 집에서 결성되었다. 다만, 유몽룡 집의 주소와 관련해서는 서로 상이하여 판결문의 주소지를 근거로 위치를 비정하였다. |














무등회 결성지 전경(2022년 촬영)
무등회 결성지 전경(2022년 촬영)
무등회 결성지 전경(2022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