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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박현숙 집터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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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학생운동
종류 가옥
상태 멸실 / 옛 가옥은 사라지고 빌라가 자리하고 있다.
정의 1929년 광주소녀회를 조직하고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했던 박현숙이 살았던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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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소녀회, 성진회, 독서회 중앙본부 
관련 인물 장매성, 장경례, 박옥련 남협협, 고순례, 이금자
관련 내용 박현숙(1914~1981)은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중 1929년 5월에 장매성(張梅性)의 권유로 항일학생결사 소녀회(少女會)에 가입하였다. 소녀회는 1928년 11월 장매성의 주도로 장경례, 박옥련, 남협협, 고순례, 이금자 등 광주여고보생 6명이 조직한 항일학생결사로서 조국의 독립과 여성해방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들은 매월 월례연구회를 갖고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한편 1929년 6월에 광주학생의 조직적 활동을 위해 결성된 독서회중앙본부와도 긴밀한 연락을 맺으며 활동하였다.
그리하여 독서회본부가 독서회원의 친목단결 및 재정지원활동을 목적으로 학생소비조합을 조직할 때 각 학교 독서회와 학생들로부터 자본금을 출자하기로 했는데 이때 광주여고보에서는 소녀회가 주동이 되어 자본금 30원을 출자하였다.
소녀회 활동을 통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던 중, 1929년 11월 3일에 광주학생독립만세운동 때에는 소녀회가 앞장서서 가두시위도중 다친 부상학생을 치료하며, 식수공급과 돌멩이를 날라다 주는 남학생들의 가두시위를 도왔다.
그후 소녀회의 조직이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그는 1930년 1월 15일에 붙잡혔다.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참고 문헌 「박현숙 판결문」(1930.10.6.)
「광주여고보사건, 11명 필경 수감」, 『중외일보』, 1930년 1월 19일
「방면전에 시험에 불응」, 『동아일보』, 1930년 1월 21일
「묘감처녀로서 철창에 든 광주여고생 12명」, 『조선일보』, 1930년 1월 22일
「출옥한 광주소녀」, 『조선일보』, 1930년 7월 4일
한규무ㆍ정찬욱, 「광주주학생운동과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독서회-‘소녀회사건’을 중심으로-」, 『한국학논총』5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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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남 광주군 송정면 소촌리 374
주소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 374-1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박현숙 판결문과 국가보훈처 공적조서 상의 주소가 서로 상이하다. 판결문의 주소지를 통해 위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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