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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매성 집 터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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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학생운동
종류 가옥
상태 멸실 / 옛 집은 사라지고 새로운 가옥이 들어섰다. 광주광역시에서 장재성과 장매성의 집터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정의 1929년 광주소녀회를 조직하고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장매성이 살았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관련 조직 소녀회, 성진회, 독서회 중앙본부 
관련 인물 장경례, 박옥련, 남협협, 고순례, 이금자, 장재성
관련 내용 장매성(1911~1993)은 장재성의 동생으로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중 1928년 11월에 동교생 장경례(張慶禮)·박옥련(朴玉連)·남협협(南俠俠)·고순례(高順禮)·이금자(李錦子) 등과 함께 광주사범학교 뒷산에 모여 조국의 독립과 여성해방을 목적한 항일학생결사 소녀회(少女會)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동지포섭에 힘쓰는 한편 매월 1회 월례연구회를 통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한편 소녀회는 성진회(醒進會)의 항일정신을 계승하여 광주학생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1929년 6월에 결성된 독서회중앙본부와도 연락을 갖고 활동하였다. 그리하여 동본부가 독서회원의 친목단결 및 재정활동 지원을 위해 학생소비조합을 조직할 때 각 학교 독서회 및 학생들로부터 자본금을 출자하게 했는데 이때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는 소녀회가 주동이 되어 자본금 30원을 출자하였다.
장매성은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동회를 주도하여 가두시위 도중 다친 부상학생 치료, 식수공급, 돌멩이 운반 등 남학생들의 가두시위를 도왔다. 그후 소녀회의 조직이 발각됨에 따라 1930년 1월 15일에 붙잡혀,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 문헌 「장매성 판결문」(1930.10.6.)
「광주여고보사건, 11명 필경 수감」, 『중외일보』, 1930년 1월 19일
「방면전에 시험에 불응」, 『동아일보』, 1930년 1월 21일
「묘감처녀로서 철창에 든 광주여고생 12명」, 『조선일보』, 1930년 1월 22일
「출옥한 광주소녀」, 『조선일보』, 1930년 7월 4일
한규무ㆍ정찬욱, 「광주학생운동과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독서회-‘소녀회사건’을 중심으로-」, 『한국학논총』5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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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남 광주군 광주면 금정 97
주소 광주광역시 동구 백서로125번길 19-9(금동 97-1)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장매성 판결문에서 주소지가 확인되며, 2022년 4월 ‘장재성장매성 집터’ 안내판이 설치되어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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