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강내면 태성리 3·1운동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거리 |
| 상태 | 현재 망덕산은 고속철도 개설로 일부가 변형된 상태이나 대부분 원형이 보존되어 있다. 조동식 집터는 새 건물을 지어 손자가 거주하고 있고 집터 근처에 묘소가 정비되어 있으며, 묘소 앞에 동상이 건립되어 있다. |
| 정의 | 1919년 3월 23일·24일·26일 조동식의 주도하에 강내면 태성리 주민이 만세시위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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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조동식(趙東植) |
| 관련 내용 |
1919년 3·1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청주군 강내면 태성리에 사는 조동식은 3월 23일에 태성리 마을 주민들을 모아 인근 야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우고 독립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청주와 조치원의 헌병과 수비대 보병들이 출동하여 해산을 명령하였지만, 3월 24일 오전 1시가 되어서야 주민들은 귀가하였다. 3월 24일·26일 밤에도 봉화 만세시위는 계속되었다. 4월 1일에는 강내면 외에도 강외면·부용면·북이면·사주면·오창면·옥산면, 4월 6일에는 문의에서도 봉화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조동식은 1919년 3월 25일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마을 주민들에게 전달을 하였고, 만세시위 후 일제에게 붙잡혀 2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후 조동식은 만주로 이주하였다가 해방 이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다 영면하였다. 묘소는 강내면 태성리 산 13-8번지에 위치한다. 정부는 1990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조동식 판결문」(1919년 4월 19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 「조동식 판결문」(1919년 5월 17일, 경성복심법원). 「조동식 판결문」(1919년 6월 12일, 고등법원). 「朝鮮總督府 內秘補 317; 忠北機第242號: 狀況報告」, 1919년 3월 28일,『大正八年 騷擾事件ニ關スル道長官報告綴』2. 「騷擾事件의 後報, 충청북도 淸州, 산상에 불 피우고」,『매일신보』, 1919년 3월 25일. 「騷擾事件의 後報, 충청북도 淸州, 밤마다 소요」,『매일신보』, 1919년 3월 30일. 「제010호ː 獨立運動日誌(七)」,『독립신문』, 1919년 9월 18일. 박걸순, 「3·1봉화만세운동과 조동식」,『충북의 봉화만세운동과 조동식의 항일투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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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북도 청주군 강내면 태성리 |
|---|---|
| 주소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강내면 산단리 산 15-5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조동식 판결문」에는 태성리 산꼭대기로 기록되어 있지만, 태성리에는 낮은 구릉 정도의 산이어서 봉화시위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2013년 충청북도 중원문화연구소 학술세미나에서는 태성리 마을 앞쪽의 선단리와 저산리에 있는 망덕산이 가장 유력하다고 비정하여 망덕산으로 확정하였다. 조흥연(조동식의 손자)의 증언에 의해 망덕산으로 비정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