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원역 문태수 의병활동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묘소 |
| 상태 | 1905년 1월에 이원역이 현재 묘목로 57에 개통되었다가 문태수 의병의 활동으로 소실되어 1910년 5월 역사를 신축하였다. 그 후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1958년 지금의 이원역 자리(이원역길 51)로 이전하여 신축하였다. 옛 이원역 자리에는 현재 식당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09년 10월 29일 문태수 의진이 이원역을 습격 방화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문태수 의진 |
| 관련 인물 | 문태수(文泰洙), 강이봉(康伊奉) |
| 관련 내용 |
문태수 의병부대가 1909년 10월 29일 밤 10시경 이원역을 습격하여 역사를 태우고 건축물 대부분을 파괴하였다. 문태수는 역에서 1丁 떨어진 남방 고지에서 지휘를 하였고, 강이봉을 포함한 나머지 의병들은 역으로 진입하여 총으로 역사무실의 유리창을 깨자 이에 놀란 역장과 역원이 도주하였고, 역장 조역 등 12명은 욕실로 숨었다. 의병들은 석유 2통으로 역에 방화를 하였고, 역장 사택에 들어가 집기를 부쉈다. 일본인의 금전도 노획하였다. 놀란 일본인 15명은 옥천과 심천 방향으로 도주하거나 부근의 산중으로 숨었다. 10월 30일 오전 1시에 급보를 받은 일본군이 대전역을 출발하여 이원역에 출동하였다. 출동병력은 헌병 오장을 비롯하여 6명, 대전 수비대 장교 이하 20명이었다. 일본군이 탄 열차가 들어오자 문태수 의병부대는 영동군 양산 방면으로 퇴각하였다. 정부는 문태수에게 1963년 대통령장을 추서하였고, 함께 했던 강이봉에게 1995년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伊院暴擾」, 『황성신문』, 1909년 10월 31일. 「伊院暴擾續聞」, 『황성신문』, 1909년 11월 2일. 조선총독부, 「옥천」, 『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 1918. 「강이봉 판결문」(1910년 2월 4일, 광주지방재판소전주지부). 「憲機 제454호; 賊魁 文太西檢擧計畵에 關한 件」, 1910년 2월 9일,『폭도에 관한 편책』1. 독립유공자사업기금운용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1, 1974, 818~819쪽. 황현, 임형택 옮김, 『역주 매천야록 (하)』, 2005, 문학과 지성사, 603쪽. 박걸순, 「옥천지역 근대의 기억과 독립운동가」,『중원문화연구』24, 2016, 154~15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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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북도 옥천군 이남일소면 강청리 |
|---|---|
| 주소 |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묘목로 57(이원리 491-82)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강이봉 판결문」에서 이원역의 주소가 강청리로만 되어 있어서 정확한 위치를 비정할 수 없었으나 동네 주민들의 증언에 의해 묘목로 57(대흥식당 자리)로 비정하였다. 『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에 이원역이 표시되어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