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곽중규 집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해외독립운동가 |
| 종류 | 가옥 |
| 상태 | 생가는 변형이 되었지만 15년 전부터 이곳에 거주하는 김광호가 생가의 완전한 복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집 입구에 생가의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
| 정의 |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배경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한 곽중규가 태어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임시의정원 / 한국독립운동자동맹 |
| 관련 인물 | 곽중규(郭重奎), 곽준희(郭駿熙), 곽중선(郭重善) |
| 관련 내용 |
곽중규(1891~1950)는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에서 출생하여 이원의 3·1운동에 참가한 후 1921년 9월 미국인 선교사의 추천으로 미국으로 가던 중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1922년 임시의정원 비서장을 역임하였고, 충청도의원으로도 활동하였다. 대한인거류민단 산하의 인성학교 교사로도 활동하였고, 이승만 대통령을 탄핵할 때에는 탄핵안을 제출하여 가결시켰다. 1931년 윤봉길 의거에서도 동생 곽중선을 시켜 일본 총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하였으며 윤봉길의거를 지원하였다. 1933년 4월 한족유일독립당촉성회 간부로 선출되어 활동하였고, 한국독립운동자동맹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 밀정의 제보로 붙잡혀 2년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1935년 가출옥 후 1938년 석가장으로 이주하여 독립운동 활동을 계속하였다. 정부는 1992년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부친 곽준희는 1907년에 장운식의진에 합류하여 옥천·금산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고, 1909년 3월 일경에 붙잡혀 10년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96년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동생 곽중선은 중국 상해에서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에 가입하여 상해 일국 총영사관에 2차례 폭탄을 투척하였고, 친일 조선인을 주살하였고, 적의 기관시설을 파괴하여 정부는 1992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곽중규에 징역 2년 반 언도」, 『동아일보』, 1933년 12월 14일. 「공산당 곽중규 2년 반 구형 4일 신의주법원서」,『매일일보』, 1933년 12월 6일. 「충북의 독립운동가열전-곽중규」,『충북일보』, 2015년 11월 5일. 박걸순, 「옥천지역 근대의 기억과 독립운동가」,『중원문화연구』24, 2016, 16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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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 486 |
|---|---|
| 주소 |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백지1길 38-63(백지리 486)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곽중규의 공적조서」에 관련 기록이 있으며 현재 생가에 거주하고 있는 김광호(1954~ )가 증언하였다. 옥천문화원에서 집 앞에 안내판을 설치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