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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홍진 집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해외독립운동가
종류 가옥
상태 원형은 존재하지 않고 현대식 건물에 한의원이 들어서 있다.
정의 임시의정원 의장 등을 역임한 홍진이 거주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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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홍진(洪震)
관련 내용 홍진(1877~1946)은 개항 직후인 1877년 8월 27일 서울 차동(車洞 : 현재의 서소문)에서 풍산 홍씨 재식(在植)과 청주 한씨 사이 3형제 가운데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그는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성장하게 되었으나 어머님으로부터 엄한 교육을 받아 신학문공부하기 시작하였다.
1898년 법관양성소를 졸업한 선생은 한성평리원(漢城平理院) 주사를 거쳐 1899년 평리원 판사가 되었다. 1905년부터 충청북도 충주(忠州)재판소 검사로 전보되어 근무하던 선생은 1910년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가 되자 검사직을 사직하였다.
그의 이같은 행동은 일제의 식민지 관리가 되어 우리 민족을 지배하고 수탈하는데 앞장설 수 없다고 하는 선생의 투철한 민족의식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검사직에 있으면서도 일제에 저항한 의병에 대한 논고를 거부하기도 했다. 한때 친형이 살았던 영동에 거주하였다.
1933년 11월 한국독립당 간부들과 함께 베이징을 거쳐 난징(南京)으로 이동하였다. 그는 1942년 10월 26일까지 임시의정원 의장에 세 번이나 선출되었다. 특히 민족유일당운동과 전선통일운동의 일익을 담당하여 대일투쟁을 위한 민족역량의 결집에 큰 공헌했다. 1945년 11월 5일 주석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 29명과 함께 충칭을 출발하여 상하이에 도착하였다. 11월 23일 주석・부주석 등 제1진이 국내로 출발한 후, 12월 1일 제2진으로 조성환(曺成煥)・황학수(黃學秀)・조소앙 등 22명과 함께 상하이를 출발하여 이튿날인 12월 2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1946년 2월 1일 서울 명동 천주교회당에서 임시의정원을 계승한 비상국민회의를 결성하고 의장에 선출되었다. 의장으로 과도정권 수립을 추진하던 중 1946년 9월 9일 70세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건국훈장 독립장(1962)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홍진 제적부」.
「홍진의장 별세」, 『동아일보』, 1946년 9월 10일.
박영석, 「晩悟 洪震 硏究」, 『國史館論叢』18, 1990, 89~104쪽.
한시준, 「민족유일당운동과 洪震」, 『한국독립운동사연구』20, 2003, 271~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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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면 계산리
주소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영동시장4길 6(계산리 696-10)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홍진 제적부」에서 확인되며 2021년 조사 때 영일당한의원 들어서 있음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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