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송병기 집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옛 모습은 없어지고, 비닐하우스와 주거 건물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19년 4월 12일 횡성 분일리(매호리)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송병기가 거주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송병기(宋秉箕), 성태현(成泰鉉), 박민희(朴民喜), 이정헌(李正憲), 송병창(宋秉昌), 유정근(柳定根), 이두연(李斗淵), 이종우(李鍾禹), 김옥봉(金玉鳳) |
| 관련 내용 |
호저면 매호리는 1919년 당시 횡성군 서원면(書院面) 분일리(分一里)였으나 1983년 행정구역 조정으로 산현리와 압곡리 일부와 함께 호저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섬강 연안에 위치한 매호리는 조항(鳥項), 상촌(上村), 수동(水洞), 향산(香山) 등 4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진 곳이다. 매호리 만세시위는 향산마을의 송병기, 성태현, 박민희와 수동마을의 이정헌 등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1919년 4월 12일 송병기의 친형 송병창의 집에 모여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리고 당일 밤 9시경에 향산마을 주민 50여명과 함께 향산마을과 수동마을 사이의 산에 올라가 횃불을 올리고 만세시위를 벌였다. 만세 소리가 주변으로 퍼져가자, 상촌마을의 유정근, 이두연과 수동마을의 이종우, 김옥봉 등이 호응하여 주민을 불러 모아 합세하였다. 70~100여명의 주민들이 13일 새벽까지 마을을 돌아다니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일제의 검거로 주도자들이 체포되었다. 송병기는 1919년 5월 15일 징역 10월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
| 참고 문헌 |
「송병기 판결문」(1919년 5월 15일, 경성지방법원) 「송병기 판결문」(1919년 7월 2일, 경성복심법원) 일본육군성,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 제50보, 1919, 755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제2권, 1970, 579~581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제5권, 1971, 951~952쪽. 원주시역사박물관편, 『1919년 3·1운동과 원주』, 2019, 122~125쪽. 오영교·왕현종, 『원주독립운동사』, 2005, 250~25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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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분일리 257 |
|---|---|
| 주소 |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향산길112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송병기 판결문」에 주소가 기재되어 있어 이를 현재 지번과 비교하여 위치를 확인하였다. |














송병기 집터(2021년 촬영)
송병기 집터(2021년 촬영)
송병기 집터 전경(2021년 촬영)
송병기 집터 전경(2021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