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민긍호 의병 주둔지-구룡사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건물 |
| 상태 | 복원 / 구룡사가 복원되어 있다. |
| 정의 | 민긍호 의병부대 소속의 의병 50여명이 주둔하며 일제와의 항전을 준비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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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민긍호(閔肯鎬)는 원주진위대 특무정교를 지낸 인물이다.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자, 원주진위대 군인들을 중심으로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민긍호 의병부대의 조직은 다른 진위대 군인들의 의병부대 참여와 활동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고, 침체하던 의병전쟁에 활기와 전투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민긍호는 의병부대 조직 초기부터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지역적으로는 원주·제천·충주·죽산·춘천·강릉 등 강원도와 충청도 각지에서 일제와 치열한 항전을 펼쳤다. 의병부대의 규모가 가장 컸을 때는 2,000여명 정도였는데, 민긍호는 이 병력을 소부대로 나누어서 유격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운영하였다. 1907년 말 민긍호는 이인영, 허위 등이 중심이 되어 13도창의대진소를 창설하자, 이에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를 위해 민긍호는 흩어진 의병부대들의 규합에 나섰다. 당시 민긍호 의병부대 소속 의병 100여 명은 원주군 소초면 학곡(鶴谷)에 머물고 있었고, 50여명은 소초면 구룡사(九龍寺)에 주둔하고 있었다. 민긍호는 원주 동쪽으로 4~5리 떨어진 곳에 1,000여 명의 의병들이 주둔해 있는 것을 알고, 그곳으로 병력을 집중시켰다. 이렇게 원주 부근에 주둔했던 의병부대들은 이제 하나의 연합의병 조직으로 결합되었다. 이것이 바로 ‘관동창의군’이다.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8년(668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나말려초 도선국사의 비보사찰 가운데 하나로 수많은 고승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다. |
| 참고 문헌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자료』 8, 1979, 쪽. 오영교·왕현종, 『원주독립운동사』, 2005, 157쪽. 김성찬편, 『原州 丁未義兵 硏究』, 2008. 신용하, 「閔肯鎬義兵部隊의 抗日武裝鬪爭」, 『한국독립운동사연구』 4,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90, 59~102쪽. 민덕식, 「閔肯鎬 義兵將에 관한 一考察」, 『아시아문화』 12, 1996,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357~391쪽. 민덕식, 「閔肯鎬 義兵將의 생애와 활동」, 『의암학연구』 10, 의암학회, 2013, 37~10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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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강원도 원주군 소초면 |
|---|---|
| 주소 |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구룡사로 500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오영교·왕현종, 『원주독립운동사』, 2005, 157쪽에 관련 내용이 있고, 구룡사는 현재 남아있어 위치를 확인하였다. |














민긍호 의병 주둔지-구룡사(2021년 촬영)
민긍호 의병 주둔지-구룡사(2021년 촬영)
민긍호 의병 주둔지-구룡사 전경(2021년 촬영)
민긍호 의병 주둔지-구룡사 전경(2021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