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한성은행 수원지점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일제침략·통치·수탈기관 |
| 종류 | 건물 |
| 상태 | 원형이 멸실되어 일반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 정의 | 1906년 개설된 일제의 경제적 침략의 지점으로 사용된 한성은행 수원지점이 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한성은행 |
| 관련 인물 | 한상룡 |
| 관련 내용 |
한성은행은 1897년 2월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은행이다. 처음엔 민간인에 대한 환전 및 금융업무를 주요 목표로 영업을 시작하였으나 1903년 2월 합자회사 공립한성은행으로 개편하면서 황실 및 정부재산을 주로 관리하게 되었다. 1906년에는 실무책임자 한상룡 취임 이후, 10월에 수원지점이 개설되었다. 이후에는 일제의 자본을 바탕으로 순조로운 발전이 있었으나 1919년 3·1운동이 전개되자 한국인들의 맹렬한 배척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은행장은 이완용의 형인 이윤용이었으며, 전무는 이완용의 조카인 한상룡으로 은행 대주주들이 대부분 친일파였기 때문이다. 1922년부터는 일본인들의 경영참여가 허용되었고 그 뒤로는 그들이 전무·은행장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더욱이 1928년 3월에는 조선식산은행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조선식산은행은 채권발행과 강제저축을 통해 일제의 전쟁자금을 공급하던 곳이었다. 이후 일제는 민족계 은행통합정책에 의해 경상합동은행과 동일은행을 합병하여 조흥은행을 설립하였다. |
| 참고 문헌 |
수원시사편찬위원회, 『수원시사』6권, 수원시사편찬위원회, 2014, 163쪽. 이승렬, 「한말 일제하 '근대의 충격'과 수원 지역 상인층의 대응」, 『향토서울』84,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13, 166~17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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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수원군 수원면 남수리 241번지 |
|---|---|
| 주소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792(팔달로 2가 18-3)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조선총독부 관보 제0822호(大正 4年 5月 3日)에 따르면 한성은행 수원지점의 위치는 수원면 남수리 241번지이다. 이에 해당하는 지번을 일제강점기 1911년 지적도와 현재의 지적도에서 비교하여 팔달로2가 18-3(정조로 792) 북쪽 일대가 한성은행 수원지점 터임을 알 수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