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류인식 생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문화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유인식의 생가는 멸실되고, 현재 3채의 새로운 가옥이 자리하고 있다. |
| 정의 | 1907년부터 1928년까지 애국계몽운동과 민족주의 독립운동을 전개한 유인식이 태어나 살던 집이 있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협동학교/경학사/조선교육협회/조선노동공제회/신간회 안동지회 |
| 관련 인물 | 신채호(申采浩) |
| 관련 내용 |
동산(東山) 유인식(柳寅植, 1865∼1928)은 경상북도 안동군 동후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의병항쟁으로 독립운동을 시작하였으나 1903년 서울에 올라가 신채호 등과 교류하며 서구사상과 학문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1907년 안동 내앞마을에 근대식 중등학교인 협동학교(協東學校)를 세우고 애국계몽운동을 펼쳤다.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1911년에 유인식은 만주 망명길에 올랐다. 유하현(柳河縣)에 정착한 그는 경학사(耕學社) 교육부장이 되었다. 그러나 1912년 7월 자금마련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가 체포되고 말았다. 1917년부터 다시 협동학교를 맡아 교육활동에 전념하며『대동사(大東史)』저술에 정성을 쏟았다. 1920년 조선교육협회를 창립하였으며, 1923년 조선민립대학설립운동을 주도하였다. 교육운동과 더불어 유인식은 사회운동에도 눈을 돌렸다. 1920년 조선노동공제회 설립에 참가, 노동운동에 힘을 쏟았는데 이는 3·1만세운동을 통해 그가 대중을 인식한 결과이다. 또한 1927년 8월에는 신간회 안동지회를 결성하고 회장으로 활동하며, 안동지역의 사회운동을 이끌었다. 계몽운동가, 역사가, 사회운동가로 시대를 앞서가며 줄기차게 항일운동을 펼치던 유인식은 1928년 4월 28일 사망하였다. 안동의 운동단체들은 유인식의 장례를 사회장으로 치르려 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유인식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동아일보』, 1928년 5월 4일, 「민중의 선각이든 유인식 선생 장서」. 유인식,『동산문고』, 동산선생기념사업회, 1977, 142쪽. 김희곤, 「동산 유인식의 생애와 독립운동」, 『한국근현대사연구』7, 한국근현대사연구회, 1997, 45∼65쪽. 안동청년유도회, 『민족 위해 살다간 안동의 근대인물』, 안동청년유도회, 2003, 107∼113쪽. 박걸순, 『(안동독립운동기념관 인물총서 2) 시대의 선각자 혁신유림 류인식』, 지식산업사,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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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안동군 동후면 주진동 |
|---|---|
| 주소 | 경북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 943 |
| 도로명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삼산길 8-1 |
| 위치 고증 | 『동산문고』와『동아일보』1928년 5월 4일자 기사에 관련 사실과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유인식의「제적등본」과 후손 유종걸의 증언을 통해 위치를 확정하였다. |














류인식 관련기사(『동아일보』, 1928년 5월 4일)
류인식 생가 터
류인식 생가 터 전경
류인식 생가 터 우측
류인식 생가 터 원경
류인식 생가 터 좌측
류인식 생가 터
조선민립대학기성회 창립총회(아래사진 두번째 줄 왼쪽 7번째)
류인식 장례 모습